[문화산책] 모두의 다큐멘터리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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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9 08:09  |  수정 2020-09-09 14:36  |  발행일 2019-08-19 제24면
[문화산책] 모두의 다큐멘터리

기술 발전의 수혜에 따라 개인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소개하는 일이 아주 수월해졌다. 심지어 몇몇의 미취학 아동의 콘텐츠가 수십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현상을 보자면, 새삼 기술의 발달이 사람들의 표현 방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소위 ‘방송 권력’이 뚜렷하게 존재했다. 현재도 그 권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 예전만큼 일방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 한다는 것은 사실 명백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휴대폰을 소유하고 항상 소지하며, 그 휴대폰이 사진과 영상을 언제든 촬영할 수 있는 고화질의 카메라를 가지고 있기에, 호도하거나 선동하는 일방적 방송 권력의 분산 또는 해체는 저항할 수 없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이는 저널리즘의 다양성을 더욱 풍부하게 하며, 개인이 저널리스트로서 직접 사회 담론을 설정하거나, 설정된 담론에 대해 적극적 참여 가능성을 주도적으로 획득함을 의미한다.

유럽 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급박한 정치, 사회적 혼란 속에서 저널리즘의 역할이 크게 요구되었고, 향상된 저널리즘의 기능을 통해 시민 운동의 확산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예술계 또한 이러한 사회, 문화적 변화와 함께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예술의 사회, 정치적 참여 기능의 가능성에 대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다큐멘터리 이론가이자 감독 존 그리어슨(1898~1972)은 다큐멘터리의 사회 계몽적 기능에 주목한 최초의 영화인이었다.

그는 기존 영화들이 정해진 역할을 수행토록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대상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실험하였다. 특히 그의 “공동체의 사실성에서 생성된 스토리는 시추에이션 코미디나 드라마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사회의 문제나 불합리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신념은 당시 기존의 문법과 체계로부터 탈피하고자 했던 예술가에게 사고 체계의 전환을 위한 탄탄한 기반을 제공하였다. “자유롭게 이동하며 삶을 관찰 및 선별"하는 예술적 태도로부터 예술가들은 대상을 ‘관찰’의 대상이 아닌 ‘소통’의 대상으로 파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예술 축제와 매체를 통해서 다양한 실험적 다큐멘터리 작업을 만날 수 있다. 때로는 거창하게, 때로는 헛웃음 날 정도로 엉뚱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작품까지 각자만의 시각과 기술로 제작해내는 개인의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마주 하자면, 그리어슨이 현재를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할까 하는 괜한 궁금증이 생긴다. 때로는 편리함이 만들어내는 지나치게 가벼운 결과들이 다양성이라는 거창함 뒤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이것 또한 다양성의 긍정적인 면인 것일까.

박인성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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