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금리 연계 파생상품 ‘깡통’ 위기…판매액 무려 1兆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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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9   |  발행일 2019-08-19 제3면   |  수정 2019-08-19

대구에 사는 A씨는 지난 3월, NH투자증권의 한 지점에서 6개월 만기의 금리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 Derivatives Linked Securities) 상품에 가입했다. 지난 10년간 피땀 흘려가며 모은 1억원을 넣었다. A씨가 가입한 상품은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에 연계돼 있는 상품이다. 증권사 직원이 고위험군 상품이라는 설명을 하긴 했지만,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손실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 더 와 닿았기에 가입했다.

7월29일, A씨는 증권사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증권사 직원은 상황이 안 좋다는 말과 함께 회복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심어줬다. 8월12일, 증권사에서 다시 A씨에게 전화가 왔다. 손실이 7천여만원이라고. A씨가 증권사에 가서 확인하니, 1억원 중 7천800만원이 손실난 상태였다. 증권사 직원은 “이런 경우가 거의 없는데…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A씨가 확인해보니, 4월30일 120만원의 손실이 난 것을 시작으로 5월31일에는 1천만원, 6월30일에는 2천만원, 7월30일에는 3천790만원의 손실이 났다. 그제서야 제대로 보니 이 상품은 독일의 금리 변동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최고 이자는 4.2%인 반면 잘못되면 원금 전체를 날릴 수 있는 것이었다.


금리 행사가격 이하땐 원금 날려
獨국채 금리상품 80% 이상 손실
만기 임박…손실 회복도 어려워

금감원, 22∼23일 특별검사 착수
‘불완전판매’ 사례 입증 주력방침
투자 피해자들 집단소송 준비 중



A씨는 “최고 4.2%의 이자를 받자고 잘못하면 ‘깡통’이 될 수 있는 상품에 가입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 증권사에서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 만기가 9월이라 얼마 남지도 않아, 만기 때 회복될 거라 기대할 수도 없다”며 “손실이 나기 시작했을 때 증권사에서 알려주기만 했더라도 손실 폭을 줄일 수 있었다”고 했다. A씨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증권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파생결합증권과 같은 내용의 상품(파생결합펀드· DLF)을 판매한 은행은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이들 두 은행이 판매한 금액만 7천억~8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해외금리에 연계된 파생상품의 판매액이 모두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독일금리와 연계된 상품은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상태다. 이 상품은 만기때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가 -0.2%(행사가격)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4∼5% 수익이 나는 구조다. 금리가 행사가격 이하로 떨어질수록 손실은 크다. -0.7%는 원금 100% 손실이 발생한다. 15일에 -0.7121%로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간 데 이어, 16일엔 -0.7247%까지 떨어졌으나 장 후반 반등하며 -0.6840%로 마감했다. 16일 종가 수준도 손실률이 96.8%에 달해 사실상 ‘깡통’이다. 다음 달 중순부터 이 상품의 만기가 돌아온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원은 실태조사를 마치고, 판매한 은행들을 검사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19일쯤 실태조사 결과를 국회에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가입자는 기관투자가나 ‘큰손’도 있지만, 퇴직금·전세금 등을 맡긴 ‘개미’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만기가 4∼6개월로 짧고, 웬만해선 원금이 보장된다고 홍보됐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에 대한 특별검사를 오는 22∼23일께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을 설계한 증권사도 적정성 여부를 살펴볼 계획이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에서 파생상품의 불완전판매 사례를 밝히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불완전판매란 금융 기관이 금융 상품에 관한 기본 내용이나 투자 위험성 따위에 대해 제대로 안내하지 않고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금감원에는 여러 건의 민원이 접수된 상태다.

금융권에선 기준치를 밑돌 경우 손실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점에서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키코에 대해 대법원은 ‘사기’가 아니라고 판결했지만, 불완전판매가 입증된 경우 배상 책임이 있다는 금감원 입장과 이를 수용하기 곤란하다는 은행의 입장이 맞서고 있다.

법무법인 한누리는 DLS, DLF 피해자들을 모아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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