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무나 갈 수 없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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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7   |  발행일 2019-08-17 제23면   |  수정 2020-09-08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국내외 위기를 겪으면서 대통령으로서 절감한 바를 밝힌 것으로 이해된다. “아직도 우리가 충분히 강하지 않고 아직도 우리가 분단돼 있기 때문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이루지 못했다”는 안타까움도 전했다.

문 대통령이 이 같은 생각을 갖게 된 데는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 사태가 직접적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일본이 규제조치를 발표한 당일 비상국무회의에서 ‘다시는 지지 않는 나라’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과의 갈등뿐만 아니다. 격화되는 세계 경제전쟁, 확산되는 안보 불안, 북 비핵화의 불투명성과 도발 등 복합위기도 대통령의 생각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항공모함 건조 등 5년간 300조원 가까운 돈이 들어가는 국방계획을 발표한 것이나 예상을 뛰어넘는 대일(對日) 대응, 자생력 강화를 위한 확대예산 편성 등의 기조를 밝힌 것도 이런 인식의 결과로 보인다.

대통령의 뜻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아무나 쉽게 이룰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넘어야 할 높은 산과 견고한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보호무역주의 강화, 세계화의 퇴조 같은 시대흐름은 이를 좀처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그런 나라는 당분간 없다’가 진실에 가까울지 모른다. 탈세계화 시대에는 자국이익 추구가 우선이다.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기존 질서는 깨진다. 세계화 시대에는 모두가 승자 되는 길을 추구했지만, 포스트 세계화 시대에는 승자와 패자가 뚜렷이 구분된다. 피아(彼我) 구별도 어렵다. 이런 흐름에 중국, 영국, 일본, 심지어 미국까지 흔들리는데 한국만 비켜가는 천운은 없다. 대통령이 위기의 탈출구로 선택한 ‘평화경제’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이 구상을 밝힌 광복절 다음 날 북한은 발사체를 쏘고 남한을 맹비난했다. 이게 눈앞 현실이다.

문 대통령의 언급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로 가기 위해 어떤 방향을 설정했는지는 최소한 읽을 수 있다. 첫째 경제강국 건설, 둘째 강력한 안보, 셋째 평화경제의 의지가 엿보인다. 외부 충격에 덜 흔들리는 나라가 되려면 정부정책도 그 방향에 맞춰야 한다. 경제강국의 핵심은 기업이고, 안보를 보장하는 것은 자주국방 실현 전까지는 한미일 안보축이며, 평화경제의 전제는 북의 완전한 비핵화다. 문재인정부의 일부 정책기조가 바뀌어야만 실현할 수 있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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