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주 괘릉리 영지

  • 임성수
  • |
  • 입력 2019-08-16   |  발행일 2019-08-16 제36면   |  수정 2020-09-08
아사달·아사녀의 슬픈 전설 흐르는 그림자 못 ‘영지’와 ‘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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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못 ‘영지’. 멀리 토함산이 보인다. 아사녀는 석가탑의 그림자가 영영 비치지 않자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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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북쪽의 텅빈 대지에 멋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영지설화공원 조성지다.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길가에 드물게 보이는 집들의 담벼락에는 여름 꽃들이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명랑했다. 그네들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창을 내렸다가 허겁지겁 도로 닫는다. 기실 삼복더위였고, 그이들과 나 사이의 우주만한 다름에 무안해졌다. 지금쯤 나타나야 할 텐데, 영지(影池). 그 때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무언가를 보았다. 느리게, 아니 빠르게, 자라인지 거북인지 여하튼 그것이 도로를 가로질러 왼편의 수풀 속으로 쓰윽 사라졌다. 찰나 멍해졌지만 그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반짝 빛을 발하며 영지가 나타났다.

불국사 창건에 동원 백제 석공 아사달
남편 만나러 왔지만 긴 기다림의 시간
못에 석가탑 그림자 안 비치자 몸 던져
뒤늦게 온 남편도 그 곳으로 뛰어들어

◆ 영지(影池)

차 세울 곳이 마땅찮다. 몇 번을 두리번거리다 못 둑 근처 가파르지만 조금의 여유가 있는 도롯가에 선다. 둑에서 본 영지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못의 왼편 가장자리를 따라 꾸며놓은 산책로가 보인다. 못의 오른편 가장자리를 따라 지나온 도로가 가늠된다. 모두 낮은 산 그림자에 감겨 있다. 둑 맞은편의 수면 위에는 불국동의 건물들의 실루엣이 보이고, 그 위로 장엄하게 솟구친 토함산이 보인다. 불국사는 저곳인가. 흐린 눈은 불국사를 제대로 식별해 내지 못하지만 저곳에서는 이곳 영지가 보일 것이다.

이태준의 단편 ‘석양’에 영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 매헌(梅軒)은 어느 여름 삼복더위에 경주 구경을 간다. 그리고 한 처녀를 만나게 된다. ‘처녀는 영지를 향해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로 매헌을 이끌었다. 매헌은 담배를 들고, 처녀는 태극선을 들고 깊숙이 의자에 의지해 먼 시선을 들었다. 몇십리 기장이나 될까, 뽀얀 공간을 건너 검푸른 산마루를 첩첩이 둘리었는데 그 밑에 한 골짜기가 번쩍 거울처럼 빛난다. “저게 영지로군!” “네, 아사녀(阿斯女)가 빠져 죽었다는… 전 여기서 내다보는 이 공간이 말할 수 없이 좋아요!”

이곳이 아사녀가 빠져 죽은 ‘그림자 못’ 영지다. 백제의 석공 아사달은 불국사 창건에 동원되어 신라로 왔다. 먼저 다보탑을 완성하고 석가탑을 쌓기 시작할 무렵, 오랜 세월 남편과 떨어져 있던 아사녀가 아사달을 만나기 위해 신라로 왔다. 그러나 여자는 부정하다 하여 남편을 쉽게 만날 수 없었다. 불국사의 스님은 ‘일이 다 끝나면 영지 못에 불국사가 비치고 그 때 만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아사녀는 연못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긴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도록 못에는 불국사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다. 그녀는 끝내 그림자 없는(無影) 못 속으로 몸을 던지고 만다.

드디어 석가탑이 완성되자 아사달은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영지로 달려왔다. 그러나 아사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그 역시 아내가 있는 영지로 몸을 던진다. 석가탑의 다른 이름은 무영탑(無影塔), 그림자가 없는 탑이다. 아사녀가 연못 속에서 탑의 환상을 보고 그것을 껴안으려 못으로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들은 만나지 못했다. 서로 그리워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인연에 있어 금기(禁忌)란 것은 얼마나 몰취미하고 못돼 처먹은 것인가.

못에서 나온 바위, 아내위한 불상 제작
4m 넘는 몸체, 대좌·광배 모두 갖춰
눈, 코, 입은 흐리지만 시선은 따뜻해
못 가장자리 대지엔 아름다운 소나무


◆영지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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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석불좌상.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아사녀의 모습을 새긴 것이라 믿는다.


아사달이 달려왔을 때 영지 물속에서 바위가 하나 올라왔다고 한다. 아사달은 죽기 전 아내의 명복을 빌기 위해 그 바위로 불상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영지에서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가면 길가 소나무 숲 속에 석불 하나가 있다. 아사달이 만들었다는 불상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 4m가 넘는 높이로 몸체와 대좌,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다. 왼손은 결가부좌로 앉은 무릎 위에 놓았고 오른손은 손가락을 가지런히 하여 무릎 아래로 내린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석굴암의 본존불과 같은 자세다. 전체적인 비례가 좋다. 6·25전쟁 때 이 지역에 주둔했던 미군들이 이 불상을 과녁으로 사격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 총탄 자국이 불상에 남아있었는데 후일 보수했다.

얼굴이 심하게 닳아 있다. 원래 미완성의 불상이었다는 말도 있다. 동네 사람들은 이 불상이 아사녀의 모습을 새긴 것이라고 믿는다. 눈도 코도 입도 흐리지만 그의 시선은 참 따듯하다. 살짝 몸을 기울여 숙인 것 같은 다정스러운 자세 앞에서 어쩐지 크게 울고 싶어진다. 지금도 사연 많은 사람들이나 임신이 잘 되지 않은 부부가 이 불상을 찾아와 정성을 들인다고 한다. 불상 옆에는 영사라는 이름의 절집 하나가 있다. 그냥 살림집처럼 보인다. 원래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땅을 파보면 기왓장 파편 등이 나온다고. 집 앞 풀밭에 주인의 자취가 있다. 폴짝 반걸음으로도 넘을 수 있을 만한 수로에 다리가 놓여있고, 그 앞에는 물소리 듣는 의자가 앉아 있다. 그인지 그녀인지 모르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쓸데없는 확신이 든다.

불상은 지금 영지를 등지고 앉은 형태다. 영지는 도로가 나면서 절반쯤 면적이 줄었는데, 원래 석불은 못 중앙에 있던 것이 못이 줄어들면서 지금과 같은 형세가 되었다고 한다. 석불이 있는 숲에서 도로 건너 맞은편 너른 땅은 현재 공사 중이다.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영지설화공원을 조성중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영지의 가장자리까지 펼쳐져 있는 텅 빈 대지 위에 아주 아름다운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공원 조성은 시작한 지 오래 되었고 예정했던 기한도 이미 지난 듯한데, 그저 키 작은 풀밭에 저 소나무 한 그루만 서 있으면 좋겠다 싶다. 영지를 바라보는 아사녀 같고, 아사녀를 그리워하는 아사달 같고, 그리움을 지닌 모든 이들의 기다림 같으니.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내려 경주박물관 방향으로 직진하다가 배반네거리에서 우회전한다. 불국사역을 지나 조금 더 가다 괘릉리 방향으로 우회전해 들어가 직진하면 된다. 먼저 왼편에 영지석불 이정표가 나타난다. 석불 앞에 주차할 곳이 넓다. 조금 더 가면 오른편에 영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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