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예술로 쓰는 역사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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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6 07:40  |  수정 2020-09-09 14:36  |  발행일 2019-08-16 제16면
[문화산책] 예술로 쓰는 역사

5년마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개최되는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이하 쇼팽콩쿠르)는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프레데릭 쇼팽을 기리기 위해 1927년부터 시작됐으며, 러시아의 차이콥스키국제음악콩쿠르, 퀸엘리자베스국제음악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손꼽힌다. 그중에서도 쇼팽콩쿠르만이 가진 특별한 권위는 오로지 피아노 부문에서 쇼팽의 작품만으로 모든 경연을 치르게 되는 전 세계의 유일무이한 음악콩쿠르이자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크리스티안 짐머만, 라파우 블레하츠, 그리고 조성진 등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인정받는 이들 모두가 쇼팽콩쿠르의 우승자, 혹은 입상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제17회 쇼팽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국내에서 소위 ‘조성진 신드롬’이라 불리는 기현상과 함께 현재까지도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2017년 5월 그런 그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수성아트피아에서 지역 최초로 개최하게 되었다. 공연을 맡은 이후로는 모든 순간이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입장권은 오픈된 지 50초 만에 매진되었고 폭주하는 문의로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으며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공연 당일에 혹시 현장에서 발생될지도 모를 모든 사고의 가능성에 대비해야 했다. 그를 보기 위해 오랜 기간을 기다렸던 관객들을 위해서는 진행에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다.

공연 전날 예상했던 도착시각을 훨씬 넘긴 새벽까지 마음을 졸이며 기다린 끝에 그에게서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잠을 청했고 다음날 리허설 일정에 맞춰 극장에 도착한 그와 처음 인사를 나누며 나이답지 않은 차분함과 진중한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피아노가 위치한 무대와 객석을 잠시 둘러보고 극장의 음향을 확인하기 위해 내게 피아노를 연주해주길 부탁했다. 그의 요청에 나는 바흐의 프랑스 조곡 중 몇 곡을 연주했고 그는 그저 객석을 천천히 걸으며 묵묵히 음향을 확인할 뿐이었지만, 지금 국내에서 가장 뜨거운 성원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이자 한국인 최초의 쇼팽콩쿠르 우승자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는 이 생경한 느낌은 좀처럼 적응하기 어려웠다. 다시 무대로 돌아온 그는 특유의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내게 피아노를 전공했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말하는 순간 내 마음 속에 잔잔한 파동이 일었던 것은 잠시나마 느꼈던 그와의 동질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40분이 넘도록 이어진 6곡의 앙코르는 모두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하는 그의 진솔한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 믿고 싶다. 내년이면 제18회 쇼팽콩쿠르가 열린다. 앞으로도 출중한 우승자들이 배출되겠지만 명성에 휘둘리지 않는 소신과 실력, 겸손함을 모두 갖춘 그와 같은 피아니스트는 쉽게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재민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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