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넘은 새활용 ‘업사이클링’ 산업·예술 전반에 화두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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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5 07:43  |  수정 2019-08-15 07:43  |  발행일 2019-08-15 제18면
대구 대표 업사이클 브랜드 ‘더나누기’
제품 생산·일자리 창출·기부도 척척
재활용 넘은 새활용 ‘업사이클링’ 산업·예술 전반에 화두
버려진 북성로의 공구나 폐자원 등으로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는 북성로 업사이클링 밴드 훌라(HOOLA). <훌라 제공>

버려지는 자원을 새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이 산업과 예술 전반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초기에는 버려지는 섬유 소재를 이용한 제품 제작이 대다수였던 반면, 최근에는 목재·플라스틱·유리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업사이클 상품이 출시되고 있다. 심지어 북성로 공구와 폐자원을 활용해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는 밴드도 생겨 화제가 되고 있다.

업사이클은 업그레이드(Upgrade)와 재활용을 뜻하는 리사이클(recycle)의 합성어로, 새 활용이라고도 불린다. 버려지는 자원을 쓰레기로 보지 않고 거기에 디자인을 더해 고부가가치를 생산한다는 개념이다. 리사이클이 폐자원을 다시 한 번 사용하다 폐기하는 데 그친다면, 업사이클은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디자인과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가치를 가진 신제품을 창조하는 활동이다.

업사이클의 개념은 1994년 독일의 산업 디자이너 라이너 필츠가 ‘잘보뉴스’에 업사이클링의 필요성에 대해 기재하고 개념을 언급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2007년 무렵부터 업사이클링이 전파됐다.

재활용 넘은 새활용 ‘업사이클링’ 산업·예술 전반에 화두
폐자전거를 이용해 재탄생시킨 인테리어 소품.(위) 자투리천으로 만든 대구경북디자인센터의 업사이클 브랜드 ‘더나누기’의 가방. <한국업사이클센터 제공>


◆업사이클 가치와 문화의 확산

나무로 만든 탁자 같지만 버려지는 커피찌꺼기를 압축해 만든 탁자, 버려지는 소방호스에 디자인을 입혀 만든 옷, 커피 자루를 소재로 한 가방, 폐와인병 이용해 만든 조명, 자투리천을 변신시킨 파우치, 필름과 인화지 봉투를 활용한 가방.

이들은 모두 폐자원으로 만든 업사이클 제품이다. 언뜻 봐서는 새 제품 같다.

서구청 옆에 위치한 한국업사이클센터 1층 전시장에 가면 이들 제품이 진열돼 있다. 한국업사이클센터는 2016년 6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서구청 옆에 개관, 업사이클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다.

대구의 대표 업사이클 사례는 대구경북디자인센터가 만든 업사이클 브랜드 ‘더나누기(thenanugi)’. 2010년 시작된 더나누기 프로젝트는 작년까지 23만 야드에 이르는 원단을 수거해 165종, 15만개 이상의 업사이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자원순환을 실천하는 것은 물론 제품 제작 과정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익금 일부는 기부도 해 상당한 경제·사회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 세계 3대 디자인 상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베스트오브베스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과가 한국업사이클센터 개관의 마중물로 이어졌다.

한국업사이클 센터는 업사이클 제품 제작과 소재 공급은 물론이고 청년 창업, 기업 상품·브랜드 개발, 사회적 경제기업 육성 등 지역 업사이클 분야에서 다양한 지원활동도 진행하면서 업사이클 산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에 힘입어 지역 내 업사이클 기업도 2016년 11곳을 시작으로 2018년 56개사로 늘어났다.

업사이클 강좌로 업사이클 문화 확산에도 기여하고 있다. 업사이클 교육과정인 ‘업사이클 메이커스 클래스’를 상·하반기로 나눠 운영한다. 원데이클래스·중학교 자유학기제 연계 등 과정이 다양하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도 업사이클링 교육과정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장지훈 한국업사이클센터장은 “부족함 없이 넘치는 시대, 그 이면에는 수많은 폐자원도 함께 넘치고 있다. 그로 인해 심각한 환경오염, 자원 고갈로 후대에 물려줄 지구가 병들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업사이클은 폐자원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새로운 시도이며 버려지고 쓸모없는 자원을 활용하는 지구살리기의 작은 실천이다. 한국업사이클센터는 업사이클 산업에 국한하지 않고, 업사이클 가치 진흥과 문화확산을 선도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사이클링 악기로 연주하는 밴드

샴푸통으로 만든 신시사이저, PVC 파이프 오르간, 알루미늄 관으로 만든 실로폰, 페인트 드럼통으로 만든 퍼커션.

버려진 북성로의 공구나 폐자원 등을 ‘새활용’해 탄생시킨 악기로 연주하며 노래하는 밴드도 있다. 북성로 업사이클링 밴드 ‘훌라(HOOLA)’다.

경북대 음악학과(성악)를 졸업한 김효선씨가 ‘2016년 북성로기술생태계 주민협업 공모사업’을 통해 업사이클 악기를 만든 것이 단초가 됐다. 밴드 활동에 불을 지핀 것은 뮤직비디오. 2017년 이 악기를 그냥 썩히기 아까워 연주 영상 한편을 만들자고 한 것이 대박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SNS에 올린 뮤직비디오가 화제가 되면서 언론사의 취재 요청이 이어졌고, 이제는 전국적으로 러브콜을 받는 밴드로 거듭났다. 2017년 전주 재개발 지역의 커뮤니티플랫폼인 ‘철봉집’ 개관 축하 공연을 시작으로 부산·세종·포항 등 지금까지 초청받은 공연이 150회에 이른다.

밴드 멤버는 김효선씨를 비롯해 안진나, 문찬미, 나제현, 석민상 5인조다. 북성로에서 알음알음 알게 된 이들끼리 결성했다.

컬러풀한 올인원 복장에다 업사이클링 악기를 들고 5인조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관중은 제압당한다. ‘저 악기들이 무슨 소리를 제대로 낼까’ 싶지만 보기와는 달리 뿜어내는 화음이 놀라울 정도다.

밴드에서 보컬과 사운드 큐레이터를 맡고 있는 김효선씨는 “PVC 파이프 오르간은 피아노 저음소리가 나는데 슬리퍼로 치며 연주한다. 악기 소리가 많은 분의 예상보다 잘 어우러진다. 공연하는 곡은 밴드 멤버들이 다같이 직접 만드는데 클래식에서 EDM까지 다양하다. 드릴 퍼포먼스로 관객 참여도 유도하다보니 관객들 반응이 뜨겁다”고 전했다.

훌라는 밴드 활동 외에도 북성로기술예술융합소인 ‘모루’를 중구청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면서 ‘북성로 업사이클’도 함께 하고 있다. 사실 멤버들이 시간과공간연구소에서 문화 기획, 연구 등을 맡아왔던 이들이라 가능한 일이다.

안진나 훌라 대표는 “훌라가 밴드와 도시재생 관련 활동을 함께 하는 그룹이다보니 도시재생 워크숍과 강의를 결합한 공연을 하기도 한다”면서 “가치가 없거나 평가절하된 자원이나 사회적 요소를 재조명·재발견하는 것도 모두 업사이클이라 볼 수 있다. 앞으로 지역의 숨겨진 역사나 자원에 예술과 의미를 더해 시민과 공유하는 활동에 더욱 힘쓸 것”이라고 전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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