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한전공대 설립 멈춰야

  •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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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4   |  발행일 2019-08-14 제31면   |  수정 2019-08-14
[영남시론] 한전공대 설립 멈춰야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우려했던 것들이 현실화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4년에는 대학 진학 연령대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 2018년도 대학 입학 정원(49만7천명)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5년뒤에는 신입생이 12만4천명 정도가 모자란다. 문을 닫는 대학이 부지기수가 된다는 얘기다. 수도권 공화국인 현실을 감안하면 지방대학부터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 공약 대학’ 설립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돈줄은 탈원전으로 대규모 적자기업으로 전락한 한국전력이다. 대학의 줄 폐교가 목전이고, 그것도 적자기업이 대학 설립에 나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전 이사회는 지난 8일 타당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온 한전공대 설립 기본 계획안을 심의·의결했다. 이 기본 계획안에 따르면 전남 나주에 ‘한전공과대학(KEPCO Tech·켑코텍)’이 설립된다. 전남 지역에 세계적인 에너지 특화 대학을 설립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추진됐다. 나주시 빛가람동 부영CC 일원 120만㎡에 대학과 연구소, 클러스터 등이 들어선다. 개교는 차기 대선 2개월전인 2022년 3월이 목표다. 설립 비용은 6천210억원, 연간 운영비는 640억원이 들어간다. 학부생 400명, 대학원생 600명의 등록금은 전액 장학금으로 지급되고, 기숙사비는 면제다. 총장 급여는 10억원, 교수진은 1억3천만~4억원의 연봉이 지급된다. 가히 파격적이다. 달리 말하면 돈잔치다. 전남도와 나주시가 1천670억원 규모의 부지를 제공하고, 연간 운영비 100억원씩 10년간 제공키로 했다. 정부도 전력산업기반 기금을 활용해 설립 비용과 운영비 일부를 보탤 방침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설립과 운영비 일부를 지원한다 하더라도 운영 주체는 결국 한전이다. 지자체와 정부의 약속은 유한하다. 55년전 사라진 수도공대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한전은 1964년 서울에 수도공대를 설립했지만, 보조금 삭감 등에 따른 재정난을 겪다가 1971년 홍익대에 통합되면서 사라졌다.

한전공대 설립은 시대 흐름에 맞지않고 명분도 없다. 교육부는 최근 2022년부터 대학 정원 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대학 혁신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쉽게 얘기하면 정원을 확보하지 못하는 대학은 문을 닫으라는 얘기다. 학령 인구 급감은 대학의 초 과잉을 의미한다. ‘인 서울대’를 부르짖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방대학의 고사 위기는 눈 앞에 와있다. 지방 대학의 위기는 지방의 위기와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을 추가 설립한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대통령 공약은 두드리면 원하는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공약을 지키는 것보다 더러는 공약을 파기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는 것도 있다. 한전공대 설립 공약도 이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전공대 설립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울 때만 해도 한전은 연간 수조원의 흑자를 내는 초우량기업이었다. 대학 하나쯤 설립하고 운영하는데 큰 부담이 없을 때다. 아이러니하게 대통령 스스로가 공약을 지킬 수 있는 명분을 없앴다. 탈원전 공약을 실천하면서 한전은 적자의 수렁으로 빠졌다. 올해 1분기만 6천3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쯤이면 한전공대 설립 공약은 폐기 됐어야 한다. 급기야 한전 소액주주들은 지난달 4일 김종갑 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을 업무상 배임죄로 검찰에 고발을 했고, 이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준비 중이다.

학생이 모자라 5년내 대학 80여곳이 문을 닫을 판이다. 전국 대학에 전기·에너지 관련 학과는 차고 넘친다. 한전공대와 유사한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도 이미 5곳(카이스트, 포스텍, 디지스트, 유니스트, 지스트)이나 된다. 한전공대가 설립되면 다음 대선이 지나면 도로공사는 도로대학, 가스공사는 가스대학을 설립해야 할지도 모른다. 에너지 분야 연구개발과 인력 양성이 꼭 필요하다면 기존 대학 중 가능성 있는 곳에 지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지금이라도 한전공대 설립을 멈춰야 한다.

김기억 경북본사 총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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