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보이지 않는 영화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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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4 07:53  |  수정 2020-09-09 14:37  |  발행일 2019-08-14 제23면
[문화산책] 보이지 않는 영화들
김상목<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올여름 극장 관객이 지난해에 비해 600만명이나 감소했다고 한다. 상반기에는 흥행 대박 ‘천만 영화’가 4편이나 나왔지만 정작 성수기인 여름엔 관객이 급감했다. 연평균 1인당 관람횟수를 상반기에 다 채웠다는 진단도 나온다. 시장이 포화상태라는 이야기. 이런 보도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영화산업 위기론’은 다른 한국경제 관측들처럼 뾰족한 해법은 없는 도돌이표이다.

한일 무역 분쟁 관련 반일감정이 고조되면서 관련 영화들이 주목받는다. 그중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의 ‘주전장’은 광복절을 며칠 앞두고 2만명이 관람해 독립영화로는 이례적 흥행이라는 부연설명과 함께 언론에 보도된다. 하지만 1천만 영화가 몇 편씩 나오는 국내 영화시장의 명성에 비해선 초라한 성적이다. 독립영화 흥행기준은 ‘1만’ 관객이라는데 ,1천만과 1만 사이의 간극은 대체 어떻게 구분되는 걸까.

전국 극장 상영관 수는 3천개 전후로 집계된다. 상반기 ‘천만 영화’는 대부분 2천개 이상의 상영관에 걸리며 흥행몰이를 질주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하루 상영관이 2천835개에 이른 적도 있으며 ‘예술영화’로 분류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또한 2천개에 달하는 상영관을 상당기간 점유했다.

올해 독립영화 중 괄목상대라 할 ‘주전장’은 50여개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이조차 적지 않은 숫자라 한다. 그렇다면 지난 주말에 개봉한 다른 독립영화들의 현실은 어떨까. 과거 정부 시절 친북 논쟁으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재미교포 신은미씨 일화를 다룬 ‘앨리스 죽이기’는 10여개 극장, 탈북여성 10명의 경험담을 다양한 미학 실험으로 접근한 ‘려행’은 첫 주에 20여개 극장에 걸렸다. 두 작품 모두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고 시의성 또한 적절한데도 알려질 기회 자체가 없다. 관객이 영화를 보려 해도 상영관을 찾지 못해 포기했다는 푸념이 SNS에서 곧잘 눈에 띈다.

딱 반대의 경우도 있다. 시류에 편승해 ‘애국심 마케팅’으로 승부를 걸었으나 역사왜곡 논란이나 부실한 전개로 기대치에 못 미친 ‘자전차왕 엄복동’이나 ‘나랏말싸미’ 등의 사례다.

대중의 수준을 쉽게 보고 혹할만한 소재에 스타를 출연시키면 된다는 안일한 사고로는 눈높이가 올라간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긴 호흡으로 내실을 갖춰야 오래 갈 텐데 이런 얄팍한 기획은 밑천 드러내기 딱 좋다. 최근 한국영화산업의 명암은 한일 무역 분쟁의 먹구름 아래 그런 당연한 순리를 증명하는 하나의 리트머스인 셈이다.김상목<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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