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내 나이가 어때서

  • 유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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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3   |  발행일 2019-08-13 제30면   |  수정 2019-08-13
20190813
유승진기자(사회부)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사랑에는 나이가 없다지만 안전운전에는 어떨까. 통계를 보면 고령운전자 교통사고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고령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 건수는 지난해 1천804건으로 2014년 1천254건보다 50%가량 증가했다. 71세 이상으로 보면 지난해 759건으로, 2014년(515건)보다 크게 늘었다.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문제가 사회문제로 등장한 지도 오래됐지만 지자체의 대응은 빈약하다. 서울, 부산 등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고령운전자 면허 자진 반납제도’를 대구도 운영하고 있다. 하나 65세 고령운전자가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10만원의 교통카드를 지급하는 게 전부다. 길게는 수십년 이상 자가용을 이용해 이동하던 이들이 반납한 운전면허를 대신해 주는 인센티브가 평생 딱 1번만 주는 10만원이 고작이다. 이게 없더라도 만 65세 이상이면 경로우대 교통카드를 통해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시내버스는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굳이 면허를 반납하지 않아도 대중교통을 편히 이용할 수 있다.

10만원짜리 교통카드 1장으로 면허를 반납할 고령운전자가 몇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대구는 2014년 100명이 반납했고, 올해는 493명이 반납했다. 전체 고령운전자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에 고령운전자 반납 대상에서 버스, 택시 등 고령 영업운전자에 대한 대책이 빠진 것도 아쉽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대구 택시 운전기사 1만5천311명 중 36.9%인 5천653명이 65세 이상 고령자다. 최고령자는 1928년생으로 만 91세다. 정년이 있는 버스는 고령운전자가 적은 편이지만 65세 이상 운전기사가 지난해 22명이었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택시와 버스의 경우 교통사고가 날 시 인명피해가 클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은 꼭 필요하다.

고령사회에서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고령운전자의 면허 반납을 이끌어 내고 싶다면 실질적인 지원과 인식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이보다 앞서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고령운전자의 차량에 실버마크를 부착해 다른 운전자가 고령운전자 차량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초보운전’ 표시만 쉽게 볼 수 있지 ‘고령운전자’ 표시는 보기 힘들다. 반응속도와 판단능력이 젊은 운전자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는 어르신을 배려하는 마음이 적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젊은 사람도 언젠가 고령운전자가 된다. 아니, 지금 젊은 사람들이 고령이 될 때는 자율주행차량이 대중화될지도 모르니 걱정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당장 많은 고령운전자들이 도로에 있고, 본의 아니게 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어르신이 다치는 것도 문제지만, 본의 아닌 실수 탓에 심각한 피해를 입는 이들도 걱정해야 한다. 고령운전자가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될 환경을 만들고,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함께 안전하게 도로에서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유승진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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