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예술작품과 정치적 표현물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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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2   |  발행일 2019-08-12 제31면   |  수정 2019-08-12

일본 아이치현 국제예술제 ‘아이치트리엔날레 2019’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가는 일본의 몰상식한 행동이다. 전시주최 측은 항의전화, 팩스, e메일이 쇄도해 전시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아이치트리엔날레 기획전으로 마련된 ‘표현의 부자유, 그 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을 비롯해 그동안 일본 정부의 외압으로 전시되지 못한 작품들이 소개됐다.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한 소녀상은 2012년 도쿄도미술관 전시에도 출품됐다가 ‘정치적 표현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되는 아픔을 겪었다. 아이치트리엔날레 전시 중단도 결국 이 맥락에 있다. 소녀상이 정치적 함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어떻게 정치적 표현물이 되는가. 이는 역사의 기록이고 반성이다.

세계 미술사를 보면 역사적 아픔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이 많다. 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작도 상당수다. 흔히 미술작품이라고 하면 감상용·장식용으로 생각하지만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는 미술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에게는 또 하나의 기념비적 작품이 있다. 청동조각 ‘칼레의 시민’이란 작품이다. 14세기 백년전쟁 때 잉글랜드 군대에 포위당한 프랑스의 칼레시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6명의 시민대표를 기리는 작품이다. 거푸집으로 제작된 10여개의 기념상은 현재 프랑스 칼레 시청광장을 비롯해 덴마크 클립토테크미술관, 런던 국회의사당 등 세계 각지에서 전시되고 있다.

전쟁의 참상을 담은 그림도 있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 고야는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을 점령하고 양민들을 잔인하게 처형하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담은 걸작 ‘1808년 5월3일’을 남겼다. 역시 스페인 출신의 파블로 피카소는 스페인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 나치 공군이 게르니카를 폭격해 수많은 민간인을 희생시킨 것에 분노해 ‘게르니카’를 제작했다. 1951년엔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한국전쟁’이란 작품으로 고발했다. 이런 작품들은 아픈 역사를 사실적으로 담아냈지만 정치적 표현물이란 얼토당토 않은 죄목으로 철거되기는커녕 역사의 진실을 당당히 밝힌 명작으로 사랑받고 있다. 소녀상이 이들 작품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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