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경험은 추억으로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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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9 07:34  |  수정 2020-09-09 14:38  |  발행일 2019-08-09 제16면
[문화산책] 경험은 추억으로
유재민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

대학원에서 음악 석사 과정을 이수하던 중 조교 업무를 함께 병행했다. 근무처는 음악대학 내의 감상실이었고 수천 장의 클래식 음반이 소장돼 있는 이곳의 운영과 관리를 맡아 감상을 원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음반을 재생할 수 있는 플레이어, 그리고 소리를 출력해주는 헤드셋만이 감상에 쓰이는 유일한 기자재였고 감상실이라는 낯설고 한정된 공간에서 낡은 음향기기를 통해 재생되는 길고 어려운 음악에 홀로 몰두하기가 쉽지 않아서였는지 소위 명반이라 일컫는 수준 높은 음반들을 소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상실을 찾은 이들이 몇 번이고 다시 방문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아마도 음반 속에 담긴 정보는 청각을 통해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하나의 감각만으로 우리의 뇌에 전달된 단편적인 정보를 해석하여 내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의식적인 노력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무의식 중 느꼈던 즐거움은 재차 반복하려 스스로 그 방법을 다시 찾기 마련이지만 의식해 받아들이는 정보의 수용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고 지루함을 동반한다. 의식적인 절차로 이루어진 이런 감상의 경험은 썩 좋은 기억으로 남지는 못할 것 같다. 시각적 효과를 강조한 문화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 은유적 상상력보다 직관적 자극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음악은 과연 어떤 매체를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오늘 따라 버글스(The 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더 씁쓸하게 느껴진다.

극장에서 예술가를 통해 생성되고 전달되는 메시지는 단순히 정보전달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미 관객은 공간이 주는 이미지와 예술가의 표정과 몸짓으로 전달되는 정보를 인식하는 시각, 예술가가 만들어내는 음악을 비롯해 공간 내의 모든 소리를 인지하는 청각, 사람과 사물이 만들어내는 냄새를 통해 감정과 기억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후각, 그리고 홍보물의 감촉과 객석의 안락함, 음이 발생함에 따라 변하는 공기의 파장 등으로 인지되는 촉각 등 인간의 오감 중 무려 네 개의 감각을 활용해 공연을 온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러 인지감각을 통해 각 기관에 동시다발적으로 전달된 정보는 우리의 내면에서 실시간으로 융합되며 기억과 경험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게 된다.

극장에서 예술작품을 관람하는 행위는 스스로에게 값진 경험을 선물하는 것과도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극장은 사회적 책임감과 공적인 사명감, 특화된 전문성을 가지고 공연을 비롯한 양질의 문화예술콘텐츠를 기획, 제작해 지역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관객이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극장을 찾는 이유 중에는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내면의 고양감과 함께 감동을 느끼기 위함도 있지만 예술가들과 시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모든 감각을 동원해 온몸으로 예술을 향유한 주관적 경험을 소유하기 위함도 있다. 주관적 경험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추억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유재민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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