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올림픽선수는 ‘마루타’가 아니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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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8   |  발행일 2019-08-08 제31면   |  수정 2019-08-08
[영남타워] 올림픽선수는 ‘마루타’가 아니다
박진관 체육부장

하얼빈으로 단체여행을 가면 여행사가 약방의 감초처럼 끼워넣는 관광코스가 있다. 중국 명칭은 ‘침화일군 제731부대 죄증진열관’, 우리말로 풀이하면 ‘일본군731부대 죄악전시관’쯤 된다. 내·외부를 꼼꼼히 관람하려면 족히 2시간은 걸린다. 처음 전시물을 접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느낌은 ‘충격’과 ‘공포’에서 시작해 ‘분노’와 ‘슬픔’으로 이어진다.

2004년 이곳에서의 첫 대면도 그랬다. 지난 5월 한국기자협회 소속 15명과 함께 이곳에 다시 들렀다. 무슨 인연인지 네번째 방문이었다. 지금은 15년 전보다 전시관 규모가 훨씬 커졌고, 관람객도 몇 배로 늘어났지만 10분도 채 안돼 전시관 밖으로 나와버렸다. 뇌리에 각인된 잔혹한 잔상을 또 한번 백업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일본은 2차대전 당시 이곳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1천549명에게 각종 세균으로 잔인한 인체실험과 학살을 자행했다. 실제 숫자는 이것보다 훨씬 많았다. 이들 중 살아서 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상은 주로 중국인이었으며 몽골인, 러시아인, 조선인도 포함됐다. 이 사람들을 ‘마루타’라고 불렀다. 마루타는 일본말로 ‘통나무’란 뜻인데, 살아있는 사람을 오감이 없는 통나무처럼 취급한 데서 비롯됐다. 가관인 건 731부대장 ‘인간백정’ 이시이 시로는 전후 미국으로부터 사면을 받아 미국에 정착, 윤락업소를 경영하며 대저택에서 말년을 보냈다.

최근 일본의 선제 경제침략으로 한일관계가 악화하면서 내년 일본 도쿄에서 열릴 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우리 국민 중 7명이 동의한다니 일본은 답을 내놓아야 한다.

보이콧의 가장 큰 원인은 올림픽선수를 ‘마루타’쯤으로 여기는 아베의 반 인간존엄적 시각에서 비롯한다. 일본올림픽위원회는 선수들의 밥상에 후쿠시마 주민도 안 먹는 후쿠시마산 쌀과 채소를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뿐만 아니다. 지금도 멜트다운(원자로 속 핵연료가 녹는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불과 20㎞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성화를 채화하고 67㎞ 떨어진 경기장에선 야구(1회)와 소프트볼게임(6회)을 치르게 한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올림픽선수촌 광장 건설 자재로 후쿠시마산 삼나무를 사용하겠다고 했다. 선수를 마루타로 여기지 않는다면 이런 발상은 나올 수 없다. ‘방사능올림픽’이란 말이 거저 나온 게 아니다.

아베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2차대전 A급 전범이자 자민당 창당주역이다. 외종조부 사토 에이사쿠는 아이러니하게도 도쿄올림픽이 열린 1964년, 자민당 출신으로 총리를 했다. 외척의 피를 물려받은 탓일까. 아베는 55년 전 자신의 선조가 올림픽 개최를 통해 패전 후 일본의 재건을 알리고자 했듯, 그 역시 내년 올림픽을 통해 핵방사능 피해를 극복했다고 전 세계에 선전하고자 한다. 더욱 파렴치한 건 유엔인권이사회가 후쿠시마 인근 방사능 피폭 문제에 대해 7가지 주요 권고안을 냈음에도 아베는 ‘묵묵부답’ ‘고고싱’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엔 미국의 주요 시사주간지 더네이션이 현재 후쿠시마 다이치 제1원전의 방사선량계가 3.77uSv로 안전 기준치보다 무려 16배 이상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역시 지난달 28일 아사히신문은 후쿠시마원전 지하에 1만8천t에 이르는 고농도핵물질 오염수가 통제되지 않은 채 방치돼 비상이 걸렸다면서 올림픽개최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사태가 불거지자 7일 대한체육회가 뒤늦게야 오는 20일부터 사흘간 일본에서 열리는 2020도쿄올림픽 선수단장회의에서 방사능 안전 문제를 공식 제기하겠다고 했다.

스포츠가 이념과 정치, 종교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는 옳다. 하지만 아베는 선수들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로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역이용하려 하고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 개막일인 7월24일은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날이다.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려는 아베에게 제2의 3·1운동 정신으로 무장해 경제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자.
박진관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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