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가벼운 존재와 무거운 존재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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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3   |  발행일 2019-08-03 제23면   |  수정 2020-09-08
[토요단상] 가벼운 존재와 무거운 존재
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 학과 교수

우리는 습관적으로 가벼운 것은 위에 위치하고 무거운 것은 아래에 위치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지극히 인간의 체험적인 파악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질들을 놓고 볼 때도 가벼운 것은 위로, 무거운 것은 아래로 향하는 성질이 있다. 예를 들어 공기는 가벼우니까 위에 떠 있고, 흙은 무거우니까 아래에 위치한다. 같은 맥락에서 하느님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할 때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감도 비슷한 하늘을 가리키며 위쪽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이 아래쪽인 땅속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위에 있을 것 같은 신(神)적인 존재에 경외감을 표하는 것도 가벼운 존재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이다. 사회적으로 블루칼라보다 화이트칼라를 선호하는 분위기도 이와 같은 습관적인 인식에서 뿌리 내린 결과다. 예나 지금이나 보통 인문계고등학교가 공고나 상고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도 가벼운 존재에 가치를 두는 인식 때문인 것이다.

학문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철학이나 신학은 가벼운 존재로 위에 위치하고 물질에 대한 학문은 무거운 존재로 아래에 위치하며, 전통적으로 지(知)적 가치추구의 대상으로 가치 있는 것은 가벼운 존재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학에서 철학을 한다거나 문학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돈 벌고 살겠냐며 다들 걱정한다. 아니, 아예 대학에서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학문으로 분류되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근대 이후 이러한 가치체계 기준이 점점 무거운 존재의 영역으로 아래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이 바로 물질만능주의이다. 인간이 무거운 존재인 물질에 가치를 두기 시작하면서 물질로부터 소외되면 불행하다고 느꼈고, 결국에 인간은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가치기준의 변화는 소우주라고 하는 인간을 놓고 볼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벼운 존재는 정신에 해당될 것이고, 무거운 존재는 육체에 해당될 것이다. 흔히 정신이 어디에 있냐고 하면, 두 발을 딛고 있는 무거운 존재인 땅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머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똑똑한 사람에게 ‘머리가 좋다’라는 표현을 쓰고, ‘다리가 좋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지극히 인간의 체험적인 파악에서 온 것이다. 육체도 중요하지만 더욱더 가치를 두는 것은 바로 정신이다. “얼굴만 예쁘면 뭐하나, 마음이 예뻐야 최고지”라는 말도 다 이런 습관적인 인식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성형수술로 얼굴을 가공해서 예뻐진 얼굴에 가치를 두려 하니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인간의 몸에서 가벼움과 무거움의 기준이 되는 곳은 배꼽이다. 배꼽 위에 있는 것이 가벼운 존재이고 배꼽 아래가 무거운 존재라 할 수 있다. 특히 배꼽 아래에 위치한 성(性)에 탐닉하고 성(性)을 상품화하는 행위는 무거운 존재에 가치를 두는 세태의 한 일면으로, 현대사회에서의 성(性) 매매 문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새 인간 세상의 가치 기준은 가벼운 존재에서 무거운 존재로 전환돼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신적인 면보다는 물질이 더 중요시되고, 그래서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물질로 해결하려고 한다. 사람들의 관심 역시 가벼운 존재보다는 무거운 존재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최근 한국을 둘러싼 여러 외교적 문제 역시 무거운 존재에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상황으로 보고 싶다. 무엇보다도 무거운 존재인 핵무기를 가지고 북한은 주변 국가들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일본은 일본대로 무거운 존재인 물질 일부를 수출 규제의 대상으로 삼아 한국 경제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은 미국대로 절대 물질적인 손해를 안 보겠다고 한국에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물질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물질로 해결하려고 하다 보면 또 다른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가벼운 존재를 이용해서 대화로써 지혜롭게 풀어야 할 것이다.
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 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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