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그런 칭찬, 차라리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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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9 07:47  |  수정 2019-07-29 08:10  |  발행일 2019-07-29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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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기말고사가 끝났다. 학생들에게 짧고 의미 있는 휴가식을 하고 싶었다. 시간 절약을 위해 5월 이래 밀린 시상을 위해 시청각실에 수상자만 60여명 모였다. 인터뷰 형식으로 상의 성격에 따른 의미와 가치를 공유했다. 교장으로 임용된 후, 반듯하고 학교일에 늘 열심인 후배가 한 가지 조언을 했다. “교장이 되면 전체 직원회의 때 특정선생님을 오랫동안 들먹이며 칭찬하지 마세요. 회의 마치고 나오면 다들 꾸중 샤워를 한 기분이에요.” 느낌은 다가왔다. 그러나 성격이 꼬인 집단도 아닌데 리더로서 일부 선생님의 노고와 성과를 칭찬하는 것이 욕먹은 기분까지 들게 한다는 것이 씁쓸했다. 시상도 그렇다. 학생들을 격려하고 축하하여 더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을 주고자 하지만, 선정 기준과 범위, 시상 방법 등으로 인한 논란도 뒤따른다.

몇 년 전에 EBS ‘학교란 무엇인가’ 6부작으로 ‘칭찬의 역효과’가 방영된 적이 있다. 평범한 어른들은 스스로 아이들에게 칭찬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칭찬의 내용을 모니터링해 보면 단순 기억 재생에도 ‘너 천재구나’라는 과한 반응으로 아이들을 민망하게 했다. 수학 한 문제 맞췄는데 ‘두고 봐, 너 서울대 갈 거야’는 식으로 미래 예언을 일삼았다. 상대를 알고 이해한 칭찬은 호감을 이끄는 비등점이 되어 사람을 움직이고 관계를 튼튼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구체적이지 못한 과장된 칭찬은 거북하고, 결과만으로 칭찬을 받으면 항상 평가 받는다는 부담감, 단순반복 칭찬은 오히려 통제한다는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다섯 살 때였다. 이사를 한다고 피아노를 옮기자 피아노 뒤편 바닥에 도넛 모양의 사탕 같은 것이 하노이탑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살펴보니 영양제였다. 몸이 약해 특별히 조제한 약인데 먹을 때마다 싫어했다. 그래서 가족 모두 그걸 먹을 때마다 ‘힘세질 거야. 으럇차차’ ‘잘했어용~ 말도 너무~ 잘 듣네’라며 박수를 치고 과한 칭찬으로 혼을 빼놓았다. 그랬는데 세상에나 입에 넣었다가 얇디얇은 몸으로 피아노 뒤편 안쪽으로 들어가 차마 넘길 수 없었던 약을 일 년 내내 뱉어놓고 온 것이다. 충격이 컸다.

상에 대한 몇 가지 부모의 반응 유형이 있다. 아이가 관심분야의 특별한 상을 못 받아서 속상해 하면 “수능만 잘 치면 돼. 까짓 것 아무 소용없어”라고 가치와 의지를 꺾는 유형이다. 아이는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신에게 진정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폰 그만 보고 열심히 해라 그랬지.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완전 비난, 공격형이다. 이쯤 되면 말하기도 싫다. “너도 좀 그런 상 좀 받아봐, 내가 집문서를 잡혀서라도 원하는 걸 해주지”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부모 노릇 희생하며 하는데 넌 그것도 못하냐는 식이다.

“제가 용쓴다고 되겠어요?” 빈둥거리며 과제활동을 대충하는 아이에게 “그럼 잘할 수 있고말고, 상도 받을 수 있지”하면 아이는 고개를 돌린다. 차라리 “하기 싫구나. 넌 어떤 것 할 때 재밌니?”라고 물으면 아이는 금방 신나게 반응을 보인다. 하고 싶은 게 없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기 싫은 것이 많은 것이다.

체육대회를 마치고 응원도구가 버려진 쓰레기장을 둘러보는데 1학년 1반 실장이 분리수거를 하고 있었다. “버리러 왔는데 너무 흐트러져 있어서요” 테이프를 쫙 뜯어내고 골판지를 착착 개고 있었다. 그게 눈에 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이 놀라웠다. 칭찬이 절로 나왔다. 아이가 열심히 한 것이 어떻게 스스로에게 기쁨이 되고, 그걸 하느라 애쓴 것이 왜 숭고한지 우리는 그러한 성장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관찰한 사실을 위주로 말해야지 판단부터 내리면 곤란하다. 내 잣대가 아닌 상대의 욕구를 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칭찬 속에 내 오만과 강요가 진하게 내포되어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칭찬, 쉬운 것이 아니다.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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