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한국영화 100년을 빛낸 영화감독 - ① 이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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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6   |  발행일 2019-07-26 제43면   |  수정 2019-08-11
대구 출신 촉망받던 소설가, 여섯 편의 영화로 세계적 거장 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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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물고기’(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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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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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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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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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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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2018)

올해는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해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한다. 1919년 김도산 감독의 ‘의리적 구토’ 이후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관객들을 울고 웃고 전율케 한 한국영화를 만들어온 영화감독들을 소개한다. 이 연재가 저마다의 삶을 성찰케 하는 좋은 영화를 만나는 작은 나침반이 되길 바란다. ‘전영잡감 2.0’ 선정으로 무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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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

교사 재직 중 등단, 뛰어난 작품 주목
장편소설 영화화作 각본, 영화계 입문
데뷔작‘초록물고기’비극적 청년의 삶
베니스영화제 2개부문 석권 ‘오아시스’
한국 첫 칸의 여왕 전도연 탄생 ‘밀양’
작년 ‘버닝’까지, 21년간 여섯편 불과
시간 지날수록 더 좋은 작품으로 호평


한국영화계에서 이창동이라는 감독이 등장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사건이라 부를 만하다. 그는 원래 한국문학계에서 촉망받던 소설가로, 장편영화 데뷔작을 내놓기 이전에는 영화 연출 경험도 없었다. 그의 형제들은 대신 연극판에선 걸출한 이들이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장이자 ‘대구연극사’를 집필하기도 한 맏형 고(故) 이필동, 공연 기획자를 지낸 둘째 고 이기동, 파인하우스필름 대표를 맡고 있는 막내 이준동까지. 이들 형제 중 셋째가 1954년생 이창동이다. 실제 그는 대학시절 연극 무대에 배우로도 올랐다.

이창동은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마치고 국어교사로 재직하며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전리(戰利)’가 당선돼 소설가로 등단한다. 그는 두 권의 소설집 ‘소지’와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펴내고 이상문학상 우수상과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민중의 상처받은 삶을 탄탄한 소설적 구도로 드러내는 데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며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정작 이창동 자신은 소설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를 느끼던 중 박광수 감독의 권유로 동료 소설가 임철우의 장편소설을 영화화한 ‘그 섬에 가고 싶다’(1993) 각본과 조연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각본을 맡으며 일종의 영화 연출 수업을 받는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제3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각본상을 받는 성과도 낸다.

영화 ‘초록물고기’(1997)는 이창동 감독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이기도 하고 이스트필름의 창립 작품이기도 하다. 이스트필름은 오직 이창동을 데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사였다. 막 개발이 시작되던 일산 신도시를 무대로 막동이라는 한 청년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누아르로 배우 한석규, 명계남, 문성근, 심혜진과 함께 작업했다. 무명의 송강호도 실제 같은 깡패로 출연한다.

영화 ‘박하사탕’(1999)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구성으로, ‘초록물고기’의 막동이와 겹쳐 보이는 영호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드러낸다. 이 영화 이전에는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 설경구가 그야말로 폭발적인 열연으로 단숨에 한국 영화계가 주목하는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한다. 배우 문소리의 데뷔작도 이 작품이었다. 관객들의 재관람과 평단의 호평이 쏟아졌다.

영화 ‘오아시스’(2002)는 한국사회의 소수자라 할 전과자 청년과 뇌성마비 장애인 여성을 내세워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비뚤어진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박하사탕’에서 이어주지 못한 두 사람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이창동은 다시 설경구와 문소리를 영화 속에서 만나게 한다.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로는 세계 3대 영화제 최초 2개 부문 석권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3편의 영화를 만들고 2003년 2월부터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참여정부의 첫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돼 1년4개월 동안 재직한 후 2004년 6월에 사임한다. 영화계로 다시 돌아온 이창동은 소설가 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를 원작으로 영화 ‘밀양’(2007)을 배우 전도연과 송강호와 함께 내놓는다. 죽은 남편의 고향에 내려온 여자가 아들을 유괴당한 뒤 종교에 귀의하면서 벌어지는 용서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전도연은 이 작품으로 한국배우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칸의 여왕’으로 불렸다.

영화 ‘시’(2010)는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애쓰는 미자가 예기치 못한 사건과 맞닥뜨리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그렸다. 배우 윤정희가 1994년 ‘만무방’ 이후 무려 16년 만에 다시 스크린 앞에 섰다. 무엇보다 소설가였던 이창동이 시를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로웠다(‘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실제 시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등장한다).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이 작품이 영화진흥위원회 마스터영화제작지원사업에서 0점을 받아 탈락한 웃지 못할 일은 오래 곱씹고 싶다.

영화 ‘버닝’(2018)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가 원작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세 청년의 만남과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을 미스터리하게 다뤘다. 이창동과 같은 대구 출신의 배우 유아인과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도 나와 더는 낯설지 않은 스티븐 연, 신예 전종서가 출연했다. 칸 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과 기술상(벌칸상)을 수상했다. ‘버닝’을 이듬해인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과 언제 다른 지면에서 느긋하게 비교해보고 싶다.

한편 이창동이 연출이 아닌 제작을 맡은 작품도 있다. 김진아 감독의 ‘두번째 사랑’(배우 하정우 주연), 우니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배우 김새론의 데뷔작),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정 감독은 이창동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있을 때 제자였다), 봉준호 감독과 한국영화아카데미 동기이자 배우 문소리의 남편이기도 한 장준환 감독의 ‘화이’, 그리고 최근 세월호 이종언 감독의 ‘생일’(이 감독은 ‘밀양’과 ‘시’에서 연출부와 스크립터 출신)까지.

‘초록물고기’부터 ‘버닝’까지 21년 동안 겨우 여섯 편, 과작도 너무 과작이다. 애가 타고 초조해진다. 이창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영화를 내놓는 흔치 않은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를 오랫동안 흠모해온 관객의 한 사람으로 이창동의 다음 영화는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을 근심하고 삶을 성찰하며 미학을 고민하는 거장의 숨결과 사유가 배어있는 영화’를 만나는 건 살면서 자주 겪을 수 없는 축복 같은 일임을 잊지 않는다.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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