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10] 산사 숲길...僧·俗 잇는 대흥사 십리숲길 끝자락엔 臥佛 닮은 두륜산과 하늘이 마중…

  • 김봉규
  • |
  • 입력 2019-07-25 07:47  |  수정 2021-07-06 10:30  |  발행일 2019-07-25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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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을 이루는 십리숲길이 끝나는 해탈문(解脫門)에 들어서면 나타나는 두륜산 대흥사 풍경. 말 그대로 심신이 해탈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우리나라 산사는 대부분 초입에 조성된 멋진 숲길을 자랑한다. 호젓하고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저절로 심신이 상쾌해지고 영혼이 맑아진다. ‘성역’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는 듯하다.

전라도의 대표적 명찰이자 고찰인 해남 두륜산 대흥사 역시 숲길이 유명하다. 10여년 전 동백꽃이 뚝뚝 떨어지던 초봄에 그 숲길을 걸었던 감흥이 생생하다. 이번에는 한여름인 7월에 대흥사를 찾았다.

오후 늦게 승용차로 대흥사 아래에 있는, 유서 깊은 여관인 유선관(遊仙館)까지 갔다. 숙박을 예약한 뒤 석양이 깔리기 시작하는 숲길을 산책했다. 상쾌한 수목의 향기 속에 물소리를 들으며 먼저 유선관 바로 위의 피안교를 지나 대흥사로 향했다. 십리숲길 막바지 부분이다. 조금 올라가니 ‘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라는 편액이 걸린 일주문이 맞아주고, 좀 더 올라가니 부도밭이 나왔다. 보기 드물게 많은 부도가 길옆에 중첩적으로 늘어서 있다. 서산대사, 사명대사, 초의선사 등 역대 유명 고승을 비롯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승려의 부도까지 다양한 부도가 모여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부도밭을 지나자 다시 하천을 건너는 다리 반야교가 나왔다. 이 다리를 건너 숲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모퉁이를 돌아가니, 숲 터널이 끝나는 곳에 다시 문이 나왔다. 해탈문(解脫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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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숲길의 마지막 부분. 숲길 끝에 해탈문이 보인다.


유선관에 여장 풀고 석양녘 산책
삼·동백 등 아름드리로 어둑어둑
숲터널 끝나니 佛國土 사찰 풍광
해탈문 통과만으로도 심신 가뿐
산사 입구 숲길은 한국 불교 특징
양산 통도사‘무풍한송로’ 등 유명



◆대흥사 십리숲길 끝에 나타나는 풍광

해탈문을 지나자 말 그대로 해탈한 기분이 확 들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두륜산의 풍경이 너무나 시원하고 멋지기 때문이었다. 멀리 한눈에 들어오는, 산봉우리 서너 개가 늘어선 산 능선이 부드럽게 펼쳐진다. 여름 활엽수 숲이 물들이고 있는 푸르름과 파란 하늘의 대비가 펼쳐내는 멋진 풍광이 심신을 탁 트이게 했다. 산 능선이 만들어내는 모양이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이라고도 한다. 실제 와불(臥佛)을 닮기도 했다. 십리 정도 되는 이 숲길을 처음부터 걸어왔다면 그 기분은 더 좋았을 것이다.

저녁예불이 시작됐는지 법고 소리가 들려왔다. 오후 6시경이었다. 그 소리를 따라가니 대웅보전 앞 누각인 침계루였다. 침계루를 지나 대웅보전 앞에 서서 법고 소리를 한참 들었다. 한 스님이 법고를 치는데, 고수인지 소리가 정말 좋았다. 법고에 이어 치는 운판 소리를 듣고, 법고와 운판을 친 스님들이 대웅보전에 들어가 예불하는 것을 감상했다. 그리고 사찰 곳곳을 둘러보고 돌아나와 유선관 앞을 지나 아래쪽 숲길을 따라 대흥사주차장까지 내려가며 산책했다.

대흥사 숲길은 ‘두륜산대둔사(頭輪山大芚寺)’라는 현판이 걸린 산문을 지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 편액 글씨는 호남의 대표적 서예가 강암 송성용(1913~1999) 글씨다. 산문에는 주련이 두 개 걸려 있는데, ‘전쟁 등 삼재가 미치지 못하는 곳(三災不入之處)/ 만년 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라는 내용이다. 서산대사가 두륜산을 두고 한 말이다.

산문을 지나 해탈문까지 이어지는 숲길은 4㎞ 가까이 된다. 소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왕벚나무, 서어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 동백나무 등 이 지역에 자생하는 나무들이 아름드리 굵기를 자랑하며, 한낮에도 그 안은 어둑어둑할 정도로 숲 터널을 이루고 있다. 숲길은 침계루 앞을 지나 흘러내리는 하천을 수 차례 건너며 굽이굽이 이어진다. ‘십리숲길’로 불리는 이 숲길은 그래서 ‘구림구곡(九林九曲)’으로도 불린다. 봄이 오래 머문다는 ‘장춘(長春) 숲길’로도 불린다.

이 길은 꽤 길어 차를 타고 천천히 달려도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만, 직접 걷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차도와 별개로 보행자를 위한 길도 곳곳에 만들어 놓고 있다. 계곡 따라 낸 ‘물소리길’, 반대편 산쪽의 ‘동백숲길’ 등이 있다. 이곳의 동백숲도 보기 드물게 좋은 동백숲이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숲길을 걸으며 또다른 ‘해탈’ 기분을 만끽했다.

◆곳곳에 있는 아름다운 산사 숲길

산사 입구 숲길은 한국 산사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입구에 긴 숲길이 조성돼 있는 우리나라 산사와 달리 중국이나 일본 사찰에서는 이런 숲길을 잘 만날 수 없다.

우리 불교는 9세기 중반 신라 도의선사에 의해 선종이 전파되면서 구산선문(九山禪門)이 개창되는 등 전국 명산에 많은 선종 사찰이 건립되었다. 이때부터 산속 사찰은 한국 불교문화의 큰 흐름이 되고, 산사 불교가 한국 불교의 한 특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도와 중국 불교의 특징은 석굴사원이고, 일본 불교는 사찰정원이 특징이다. 그래서 인도의 아잔타 석굴, 중국의 운강 석굴과 용문 석굴 등이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일본은 독특한 정원을 가진 교토의 료안지와 덴류지 등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리고 한국에는 이와 달리 산사 불교가 발달했고, 고유의 산사 불교문화 덕분에 지난해 7개 산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이런 한국 산사의 특징 중 하나가 입구 숲길이다. 불교적 우주관에서 나온 이 숲길은 불국토(佛國土)인 사찰과 속세 간의 경계인 셈이다. 이 숲길을 통과해 불국토에 이르게 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 숲길을 통과하면서 청정한 마음을 갖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대흥사 숲길 말고도 아름다운 산사 숲길이 많다. 일주문에서부터 1㎞ 정도 이어지는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 부안 내소사 전나무숲길, 합천 해인사 홍류동 계곡 숲길, 순천 송광사 숲길, 승주 선암사 숲길, 의성 고운사 소나무 숲길, 청도 운문사 소나무 숲길, 양산 통도사 소나무 숲길 등.

특히 통도사 숲길은 최근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다른 산사의 숲길과 달리 보행전용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매표소가 있는 통도사 ‘영축산문(靈鷲山門)’을 통과하면, 차량들은 왼쪽에 나타나는 무풍교를 건너 포장도로를 따라 주차장으로 가게 된다. 차량통행을 금지한 보행로는 무풍교를 건너지 않고 바로 직진하면서 시작되는 숲길이다. 무풍교 근처에서 시작되는 무풍한송로는 1.6㎞ 정도 된다.

이 길은 1960년대까지는 마차가 다니던 흙길이었다. 1970년대는 차량과 보행자가 함께 사용했으며, 아스팔트도 깔렸다. 1990년 무풍교를 만들고 새 자동차 도로를 내면서, 이 길은 보행자 전용으로 바뀌었다. 아름다운 숲길의 분위기를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다.

오래된 산사들은 고목들이 늘어선 멋진 숲길을 자랑하지만, 대부분 차량이 함께 이용하게 되면서 점점 호젓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없는 길로 변해버렸다. 보행자는 차량이 원망스럽고, 차량 운전자도 보행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상황이다. 무풍한송로는 원래의 숲길을 보행자 전용으로 하고 자동차 도로를 따로 내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한 대표적 사례이다.

계곡 옆으로 나 있는 무풍한송로에 들어서면, 속세를 벗어나 딴 세상으로 들어온 느낌이 든다. 수백년이 된 아름다운 노송들이 길 양 옆에 늘어서 하늘을 가리고 있고, 새소리와 물소리가 한가롭게 들려온다. 노송과 계곡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선사하는 이 보행로 주변은 ‘무풍한송(舞風寒松)’이라 불리며 통도팔경의 첫 번째로 꼽힌다. ‘무풍한송’의 ‘무풍’은 이곳의 바람이 다른 지점보다 특별히 심해 ‘바람이 춤을 춘다’는 의미로 붙여졌다.

아름다운 산사 숲길들이 무풍한송로처럼 차량의 방해를 받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숲길로 거듭나 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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