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자전거와 에칭가스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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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8   |  발행일 2019-07-18 제30면   |  수정 2019-07-18
[취재수첩] 자전거와 에칭가스
임훈기자(경제부)

개인적으로 자전거를 좋아한다. 3년 전부터 바퀴가 작은 접이식 미니벨로로 출퇴근을 하다가 1년 전부터는 날렵한 자태의 로드 사이클을 주로 타고 있다. 지난주 일요일에도 동호인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청도군 일원의 한적한 도로를 내달리며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이날 라이딩 대열이 출발하기 전 동료들이 경산시립박물관 광장에 집결했다. 형형색색의 라이딩복을 입은 자전거 라이더들이 다양한 브랜드의 자전거를 탄 채 광장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광장에 주차된 자전거들은 일반인이 접하기에는 다소 고가의 자전거가 대부분이었다. ‘첼로’와 ‘위아위스’ 같은 국산 프리미엄 브랜드의 자전거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스페셜라이즈드’ ‘스캇’ ‘캐논데일’을 비롯해 ‘트랙’ ‘자이언트’ 등과 같은 외국산 브랜드가 주를 이뤘다.

자전거 브랜드의 국적도 디자인도 달랐지만, 거의 일관되게 공통된 부분은 있었다. 페달 등 기본 부품과 변속기, 스프라켓 등 구동계 거의 대부분이 일본산이거나 일본 브랜드의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방식) 제품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종종 이탈리아 등 유럽이나 미국 브랜드의 부품이 장착된 자전거가 있었지만 소수였다. 자전거의 몸체 또한 탄소섬유로 만들어진 ‘카본 프레임’이 대부분이었다. 자전거의 바퀴 또한 가볍고 강성이 좋은 탄소섬유 바퀴가 대세였다. 고가 자전거들의 탄소섬유 원사 상당수는 일본 기업이 제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양각색의 자전거를 바라보다 최근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에칭가스(불화수소) 등 고품질의 반도체 가공재 생산으로 세계시장을 점유한 일본 기업의 위상이 자전거의 모습과 겹쳐져 보였다. 자유무역 경쟁체제 하에서 가성비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일본의 자전거 부품 기업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맹목적인 극일(克日)을 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일본의 수출규제로 우리나라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대구경북도 일본의 수출규제 영향권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일본 언론들은 탄소섬유나 공작기계 분야까지 수출규제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계공업이 주축을 이루는 대구지역 산업현장에도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사용했던 일본산 수입물품들이 지역 경제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울산에서 소규모 금형업체를 운영하는 지인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고품질의 로봇 부품을 생산해 자부심이 크지만, 우리 공장의 정밀가공기계는 죄다 일본산”이라며 제조업 전반의 대일(對日) 의존을 우려했다. 일개 중소기업인이 알고 있었던 사실을 정부나 대기업이 몰랐을 리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등 제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기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변명을 받아들이기에는 우리 경제가 입을 타격이 너무 크다. 임훈기자(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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