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레저·관광 명소, 어디까지 가봤니? .10] 마비정 벽화마을

  • 박종진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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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7   |  발행일 2019-07-17 제13면   |  수정 2019-07-17
벽화에 담긴 그때 그시절…정겨운 시골풍경 속으로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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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인 관광지로 떠오른 대구 달성 마비정 벽화마을 전경. 황토 빛 배경으로 통일감 있게 그려진 벽화를 통해 1960~70년대 농촌의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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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해설사가 단체 관광객들에게 연리목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뿌리부터 몸통·가지까지 서로 엉켜있는 돌배나무와 느티나무는 벽화사업을 위해 돌담을 정리하던 중 발견됐다.

대구 달성에는 빼어난 경관과 함께 유서깊은 장소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 중 마비정 벽화마을은 달성의 명소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됐다. 35가구, 70여명이 살고있는 자그마한 오지마을이 ‘벽화’ 하나로 전국적인 관광지로 탈바꿈하면서다.

매일 평균 200여명, 주말에는 2천여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대만·홍콩·중국 등 외국인의 방문도 꾸준하다.

특히 마비정 마을은 다른 지역의 벽화마을과 달리 한 명의 작가가 모든 그림을 도맡아 그렸다는 점이 이채롭다. 특색있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옛 시절 우리네 삶을 고스란히 벽화에 담아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기를 끌고 있다.

‘달성 레저·관광 명소, 어디까지 가봤니?’ 10편은 1960~70년대 농촌의 정겨운 풍경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마비정 벽화마을을 소개한다.

#1.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은 그 시절로의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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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넘어 낯선 이를 훔쳐보는 오누이의 모습이 정겹다. 오누이 캐릭터는 2013년 한국관광공사 월간지 ‘청사초롱’ 특별호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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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부부화합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거북바위와 남근갓바위.

화원읍 본리리의 가장 남쪽 마을. 해발 200m에 위치한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도심과 사뭇 다른 기온에 낯섦이 느껴진다. 체감 온도차가 상당하다. 수풀이 우거진 데다 고도차도 있을 터. 분지인 대구에서 이곳은 산골이나 진배없다. 마을 입구부터 갖가지 조형물이 이방인을 반겼다.

그 중 버스주차장 한편에 늠름하게 서있는 하얀색과 검은색 말 조형이 유독 눈에 띈다. 이 조형물은 ‘천리마’ 비무와 암말 백희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두마리 말이 초입에 자리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마을 이름이 이들의 이야기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전설을 종합해 보면 천리마 대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암말을 불쌍히 여겨 마을 주민들이 마비정(馬飛亭)을 짓고 추모하게 됐다고 한다. 또 백희의 목을 벤 장수가 정자를 세웠다는 설도 있다.

걸음을 서둘러 마을로 향한다. 이곳이 마비정 마을임을 알리는 첫 벽화부터 정겨움이 묻어난다. 잠자리를 잡는 소동과 장독대에서 개구지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 2012년 벽화사업을 시작할 당시 이 그림은 없었다. 동네 어귀부터 벽화마을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이듬해 따로 작업을 했다.

얕은 오르막을 조금씩 오르면 60~70년대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나지막한 담벼락과 집 벽마다 황토 빛 배경으로 그시절 정겨운 모습들이 아로새겨있다. 몇몇 초가를 올린 집들은 시골의 정취를 더해준다.

담벼락 넘어 낯선이를 빼꼼 바라보는 오누이는 마을 최고의 인기 캐릭터다. 2013년 한국관광공사가 발간하는 책자 ‘청사초롱’ 특별호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마을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오누이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체 벽화 중 오누이가 등장하는 건 모두 5곳이다.


장독대·개구쟁이 아이·누렁소 등
1960∼70년대 농촌 모습 고스란히
주말 2천여명 찾는 전국적 관광명소
연리목·거북바위 등 색다른 볼거리
사랑고백 포토존은 연인들에 인기
능소화·접시꽃 등 온통‘꽃동네’



방문 기록부터 사랑고백까지 다양한 ‘족적’을 남길 수 있는 낙서 담장도 눈에 띈다. 이미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름 등을 새겨놨다.

마을 벽화 중 상당수는 입체감을 더해주는 소품과 어울려 색다른 재미를 준다. 특히 학교 난로 그림 앞에 설치된 도시락과 책상, 의자는 사진을 찍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할 정도다. 이날도 달성참꽃투어를 통해 나들이 온 단체 관광객들이 추억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달고나 그림 옆 국자와 엿장수 그림의 가위도 위트있는 사진 연출에 안성맞춤.

벽화마을에 이색 작품이 빠지면 섭섭하다. 마을회관 쪽으로 가면 움직이는 누렁소를 만날 수 있다. 아래쪽에서 보면 소가 밑으로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고, 오르막을 오르면 소가 앞으로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착시현상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마비정 쉼터를 지나 물레방아쪽으로 오르다보면 ‘사랑고백 포토존’이 나온다. 벽화마을에서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다. 많은 연인이 이곳에서 프러포즈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낸다. 특이한 건 프러포즈를 받는 사람이 실제 가정집 안으로 들어가 피사체가 된다는 점이다. 집주인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벽화 작업을 맡은 이재도 화백은 고마움을 그림으로 대신했다.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 자손 번창을 뜻하는 석류, 부귀영화를 가져오는 나비 등을 이 집 벽화에 녹여냈다.

이외에도 마을 곳곳에는 옛날 시골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장독대와 메주, 겨울풍경, 호박넝쿨, 가을추수, 다람쥐와 목련, 수박먹기 등 주제도 다양하다.

#2. 일심동체 사랑나무와 붉은 노을 전망대

마을을 둘러보면 절로 허리가 숙여진다. 푸르름을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는 다양한 식물을 들여다 보기 위함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작약, 맥문동, 사피니아, 능소화가 피어있는 모습을 보면 꽃마을이 따로 없다. 특히 여름철에는 접시꽃이 유난히 많아 시골 분위기가 더욱 짙게 느껴진다. 무궁화를 닮은 접시꽃은 여러해살이 풀로 6~7월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담벼락을 타고 이리저리 뻗어나가는 담쟁이덩굴의 모습도 정감 넘친다. 마을의 운치를 더하는 담쟁이덩굴은 해마다 아주 작은 발자국을 남긴다. 1㎜도 채 안되는 동그란 덩굴손이 담이나 나무에 달라붙은 자국이다. 검은색 자국은 1년 전, 회색 자국은 2년 전의 흔적이라고 한다. 손자국을 확인해 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이 마을에서 나무 구경은 필수다. 흔히 볼 수 없는 나무를 만날 수 있어서다. 마을 입구에서 오르막을 따라 걷다보면 첫 갈림길에 두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흔히 말하는 연리목이다. 하지만 흔하지 않다. 나무와 나무, 가지와 가지(연리지), 뿌리와 뿌리(연리근)가 서로 엉켜있는 연리목이다. 수종은 느티나무와 돌배나무. ‘두 나무의 사랑’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도 벽화사업 덕분이다.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공무원이 돌담을 정비하던 중 연리목을 발견했다. 당시에는 돌담이 나무 위로 높게 쌓여있어 연리목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범상치 않은 풍채를 가진 옻나무도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마을 오른쪽 귀퉁이에 자리잡은 이 나무는 둘레가 무려 2m에 달한다. 수령 60여년에 높이도 15m가량이다. 통상 옻나무가 높이 12m·지름 40㎝까지 자라는 걸 감안하면 꽤나 덩치좋은 녀석이다. 약재로 많이 쓰이는 특성 탓에 깊은 산속에서도 이 정도 크기의 옻나무를 보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나무의 남다른 발육에는 작은 비밀이 숨겨있다. 예전부터 이 나무는 마을 에서 음식물을 버리는 장소로 활용됐기 때문에 비옥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옻나무 바로 뒤쪽엔 마을 풍광을 감상하기 좋은 전망대가 위치한다. 나무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널찍한 공간과 함께 두 손으로 하트를 그리고 있는 황동색 조형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조형물의 작품명이 ‘붉은 하트’인 이유는 해 질 무렵 유난히 붉은 노을을 감상할 수 있어서다.

옛우물 근처에는 소원을 이뤄주는 영물도 있다. 사이좋게 서 있는 거북바위와 남근갓바위다. 오래전부터 마을을 지키고 있는 이 바위들은 영검함을 떠나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마비정누리길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누리길은 마비정~삼필봉~남평문씨 본리 세거지~화원자연휴양림~대구수목원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다. 경사가 완만해 초등학생도 수월하게 걸어갈 수 있다. 2014년 한국관광의 별 후보지에 오를 만큼 주변 경관도 아름답다. 가벼운 산책을 원하면 토끼장 오른편에 위치한 대나무숲길을 찾으면 된다.

박종진기자 pjj@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대구의 뿌리 달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공동기획 지원:달성문화재단


마비정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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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마을 우물로 사용됐던 마비정.

마비정이라는 마을 이름은 말(馬)과 깊은 연관이 있다. 조선 시대 때 말을 풀어 놓아 먹이던 지역 또는 말이 쉬어가던 곳이란 뜻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와 함께 천리마와 마비정(馬飛亭)에 관한 설화도 전해오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비무’란 말과 암말 ‘백희’가 한 마을 근처 대나무 숲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고담’이란 장수가 이 마을을 지나다 천리마의 존재를 알게 된다. 마고담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천리마를 얻기로 결심하고 비무를 찾아 나선다.

마침 비무는 꽃과 약초를 구하러 산에 올라갔다. 암말인 백희만 홀로 대숲에 남아있었다. 백희를 본 마고담은 천리마로 착각하고 전쟁터로 나갈 것을 제안했다. 비무가 전쟁에 끌려가 죽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백희는 자신이 천리마인 것처럼 행세했다. 천리마의 능력을 확인하고 싶었던 마고담은 백희에게 한가지 시험을 냈다. 바위에 올라 건너편을 향해 활을 쏠테니 화살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칼로 베겠다고 했다.

백희는 죽을 힘을 다해 달렸지만 화살을 따라 잡을 수 없었다. 마고담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백희를 단숨에 베어 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비무는 백희의 주검을 보고 슬픔에 겨워 구슬피 울었다.

그 후로 비무는 자취를 감췄으나 백희의 무덤에는 꽃과 약초가 끊임없이 놓여있었다. 세월이 흘러 온 나라에 역병이 돌았는데 이 마을만은 안전했고, 사람들은 백희 무덤에 놓인 약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마을사람들은 비무를 기리고자 말 솟대를 만들었고, 마고담은 자신의 잘못을 빌기 위해 마비정이란 정자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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