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중소기업의 일과 삶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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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6   |  발행일 2019-07-16 제31면   |  수정 2019-07-16
[CEO칼럼] 중소기업의 일과 삶의 균형
황규연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여름 한가운데로 접어들며 곧 휴가철이 시작된다. 우리 선조들도 여름휴가가 있었다. 음력 6월 보름인 유두절(流頭節)로 계곡에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으며 더위를 식히고, 일가 친척이 함께 음식을 나누며 하루를 보냈다. 한창 바쁜 농번기에 하루를 내어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챙기는 유두절 풍속은 가정의 평안이 모든 일의 기본이라는 가화만사성의 지혜가 엿보인다. 기업이 샐러리맨들에게 일터 제공자 역할을 하는 오늘날에는 근로자의 행복한 가정생활이 기업의 성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의미로 확장할 수 있다.

근래 많은 기업들이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 유연근무제, 모성보호 등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우리나라 근로자의 노동시간은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며, 대다수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장시간 노동을 하는 근로자 비중이 훨씬 큰 실정이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들은 비용증가와 대체인력 확보를 감당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목소리 또한 높다.

청년들과 중소기업 간 일자리 미스매칭도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기술경쟁력을 보유한 우수한 중소기업이 많다. 하지만 경제발전을 지탱해온 우량 중소기업들이 오늘날 우리 청년들에게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좋은 일자리의 기준으로 워라밸을 가장 우선으로 꼽았다는 조사결과와 같이, 청년들의 인식변화가 구직난 속에도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욜로·소확행 등의 신조어 유행이 투영하듯 일과 삶에 대한 가치관 변화는 되돌리기 어려운 메가트렌드로, 우리 중소기업들도 이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와 대책이 필요하다.

근로자가 행복한 중소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 내부의 변화가 선결되어야 한다. 우선, 노동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경영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스마트공장 기술을 도입한 기업은 생산성이 향상되고 작업환경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4차 산업혁명 관련 첨단기술을 활용한 경영혁신을 통해 제조과정 효율화, 산업 안전 향상, 근로시간 단축 등이 실현된다면 인력난 해소 및 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

기업 문화의 개선도 필요하다. 직원의 행복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근로자의 권리를 적극 보장하고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문화·복지제도의 확충과 조직문화혁신 활동 등을 통해 가족 친화적 일터를 조성해나가고 재직자 교육훈련, 산업단지 대학캠퍼스 등 산업현장 인근의 교육 플랫폼을 활용한 근로자의 자기계발도 지원해야 한다. 근로자의 행복과 성장을 기업의 주요 가치로 여기는 기업문화가 확산되어 나갈 필요가 있다.

직장 인근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반시설의 확충도 이루어져야 한다. 안정적인 근로와 여가시간 활용을 위한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효용도 줄어든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같이 자체적으로 어린이집, 피트니스센터 등 우수한 복리후생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것이 정부가 중소기업들이 집적한 산업단지에 문화, 복지,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청년친화형산업단지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이다. 근거리에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이 있고, 안락한 주거와 퇴근 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근로자의 삶의 질도 더욱 나아질 것이다.

나아가 대·중소기업 간 기존의 협업 방식과 구조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대기업이 협력사에 일을 주는 방식이나 납기·대가 등을 보다 수평적이고 공정하게 개선해 나가야 한다. 대·중소기업 간 성숙한 협력문화의 형성이 해당생태계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길임을 인식해야 공존과 상생이 가능하다.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은 탁족(濯足)을 하며 무더운 여름을 났다. 맑은 물에 발을 씻으며 더위를 식히는 동시에 마음을 정화하는 정신수양의 하나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휴식과 수양을 보완적인 과정으로 승화한 것처럼 워라밸 역시 기업의 성장과 근로자의 행복이 선순환하는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룬 중소기업이 많이 등장하여, 우리경제의 미래에 건강한 활력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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