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보수정당의 철학과 수권정당의 면모

  • 권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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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6   |  발행일 2019-07-16 제30면   |  수정 2019-07-16
[취재수첩] 보수정당의 철학과 수권정당의 면모

보수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정당지지도가 일정 수준 이하의 이른바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용 악화와 성장률 하향조정 등은 국민 경제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서민 생활을 팍팍하게 만드는 요인임에도 한국당의 반사이익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박스권 추세가 계속된다는 것은 한국당도 그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정치권 분석가들은 안보 문제를 우선적인 원인으로 꼽는다. 안보는 보수정당의 전공 분야인 데다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가 답보상태에 있는 데도 한국당에는 실점이 더 많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지난해 지방선거 때도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스탠스를 잘못 정해 거센 역풍을 맞기도 했다. 전공이라고 쉽게 봤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최근에는 북한선박 삼척항 입항 건이 핫이슈다. 한국당은 대북 경계망에 구멍이 난 것 등을 문제삼아 정경두 국방장관 경질을 요구했고,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 사건까지 겹치자 해임건의안을 제출했다. 한국당이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보는 이면에는 북한이 실제로 남한 사회로 침투를 시도했다면 이런 경계 태세로는 사전봉쇄가 어렵고, 결국에는 엄청난 사회혼란과 국가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래서 물샐틈없는 경계망을 역설하겠지만, 그것이 정치적으로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최전방의 경계근무는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 사단장, 대대장 등이 서는 게 아니다. 밤잠을 자지 않고 무거운 눈꺼풀을 비벼가며 어둠을 주시해야 하는 군인은 이등병을 포함한 사병과 부사관, 초급장교들이다. 군의 경계 수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내부 기강을 강화한다면 말단 조직의 ‘군기 강화’와 직결된다는 것은 군대를 다녀온 보통 남자들이라면 다 안다. 근무 중에 졸지 않도록 군기를 잡는 고참병이나 얼차려를 받는 졸병이나 모두 서민 가정의 금쪽 같은 자식들이다. 정치권에서 경계망 허술에 대한 문책을 집요하게 요구하자 사병 한 명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적어도 군 복무를 면제 받은 야당 대표나 군 복무 경험이 없는 여성 당직자들은 군 기강을 거론하는 것을 삼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있다. 상당수 국민은 문재인정부에서 그 정도의 허술함을 희생하더라도 내 자식이 좀 편하게 군생활을 하고 있는 데 대해 오히려 안도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사 대북 경계망에 그런 구멍이 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그 위험성을 한국당처럼 ‘치명적’으로 보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판문점에서 한·미·북 정상이 만나 악수를 하고 포옹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록 항구적인 평화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현 정부에선 북의 남침 가능성을 낮게 보는 국민이 더 많을 수도 있다.

한국당은 박스권을 벗어나 외연 확대를 위해선 보수의 관점과 철학을 국민에게 강매하는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 민생 현장에서 직접 부닥친 서민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대변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정부정책을 견제할 때 수권정당의 면모는 탄탄해질 수 있을 것이다.

권혁식기자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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