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기방도령’ 최귀화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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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2   |  발행일 2019-07-12 제43면   |  수정 2019-07-12
나체로 파격 등장 코믹사극에 도전 “이왕 할 거 제대로 웃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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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머리는 산발에 언제 씻었는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더러운 외모의 남자가 나체 상태로 유유히 산에서 걸어나오는 모습이 스크린에 포착되면서다. 영화 ‘기방도령’에서 최귀화는 첫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간 우리에게 익숙하게 비쳐졌던 비열하거나 소시민적인 모습에서 한참 벗어난 파격 그 자체다. 낯선 한편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방도령은 폐업 위기에 처한 기방 ‘연풍각’을 살리기 위해 조선 최초의 남자 기생이 되는 허색(이준호)의 이야기를 그린 코믹 사극이다. 최귀화는 허색과 형제처럼 지내는 육갑 역으로 첫 코미디 연기에 도전했다. “부담스러웠다”는 말로 코믹 연기에 대한 소감을 피력한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대사 하나, 표정 하나도 허투루하지 않는 철저한 준비와 탐구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특히 육갑 캐릭터에 대한 전사(前事)를 만들어가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대본에는 육갑의 이야기가 없고 마냥 웃기기만 하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고 고려가 망하면서 산속에 숨어 들어가 살았던 고려 왕족의 후손으로 설정했다”며 “덕분에 허색과 육갑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생긴 것 같다”며 만족해 하는 그다. 연기를 업으로 삼아 22년간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온 그가 다음엔 또 어떤 인물의 삶을 살게 될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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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로 등장하는 첫 신부터 강한 임팩트를 선사했는데.

“워낙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되게 부담스러웠다. 나체로 등장하는 게 꼭 필요할까 싶기도 했지만 감독님이 이 부분은 절대 양보를 못 하시겠다고 했다.(웃음) 결국 나는 상반신만 노출을 하고, 나체로 등장하는 장면은 대역을 쓰기로 했다. 산속에서 촬영을 했는데 마침 눈도 내리고 너무 추워서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첫 코미디 영화 출연이다. 하지만 코미디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코미디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고민을 좀 했다. 개인적으로는 휴먼드라마나 사회고발을 다룬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결정할 때 감독님의 영향이 컸다. 감독님이 유쾌하고 자상하고 위트가 넘치는 분이셨는데, 첫 만남에서 그에 대한 강한 믿음이 생겼다. 이왕 코미디를 할 거면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같이 해보시죠’ 했다.”

▶누구보다 코믹 장르에 최적화된 배우라는 느낌을 갖고 있는데 의외다.

“과거 잠깐잠깐 웃음을 주는 역할들을 했다. 잠시 등장을 하더라도 코믹 캐릭터라면 성격에 맞게 웃겨야 한다. 이번에는 코미디를 주로 내가 책임져야 하니 그 부담감이 상당했다. 그나마 과거 연극무대를 통해 다수의 코미디 작품을 접한 경험이 있어서 어느 정도 코미디 호흡은 알고 있었다. 그때 많은 연구와 테스트를 거쳤다. 나는 분명 웃음이 터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연기를) 했는데, 웃는 관객도 있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관객도 있었다. 그때 느꼈다. 관객마다 성향 차이가 있겠지만 아무리 코미디라도 초반에 감정을 진실되게 쌓지 못하면 후반부에 가서 원하는 웃음을 주지 못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장르에 상관없이 진실된 연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고 연기를 위한 연기를 하면 그건 바로 들통나고 마치 바람빠진 풍선처럼 돼버린다. 코미디는 그런 걸 더 많이 요구하는 것 같다. 알면 알수록 더 어려운 장르가 코미디다.”



폐업위기 기방 ‘연풍각’살리기 위해
조선 최초 남자 기생이 되는 이야기
기방도령 허색과 형제같은 육갑 역할
휴먼드라마·사회 고발류 좋아하지만
진실된 연기하면 장르 상관없이 통해
고려 왕족 출신과 랩으로 소개하는 신
감독과 소통하며 내 의견 반영된 것
잔잔한 사랑 마무리…세련되게 담아

무뚝뚝한 편이지만 배우하며 변해가
카메라 잡히든 않든 모든 장면 준비
누구든지 쉽게 호흡 잘 맞추는 비결



▶이제껏 진중한 모습만 보여줬던 당신의 모습에서 코믹적인 부분을 캐치한 감독의 혜안을 엿볼 수 있다. 감독이 특별히 주문한 게 있었나.

“감독님은 이게 첫 상업영화다. 때문에 배우만큼이나 감독님의 부담감도 크다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감독님은 배우들과 자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촬영장은 물론이고, 집에 있을 때도 ‘지금 시간 괜찮으면 보자’며 자주 연락이 왔다. 시나리오를 써놓긴 했지만 배우의 장점을 좀 더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다고 하더라. 그러려면 친해져야 하니 그렇게 지속적인 만남을 가졌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감독님이 특별히 주문한 건 없다. 오히려 배우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했다. 육갑을 고려의 왕족 출신으로 설정한 것도 내 의견을 반영했다. 그래야 허색과 육갑 사이의 긴장감이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비록 거지같은 행색이지만 왕족 출신이고, 너(허색)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지만 천하디 천한 예인(藝人)이라는 언밸런스를 유지하고 있어야 코믹적인 부분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감독님도 흔쾌히 좋다고 하셨고 그런 관계성 때문에 웃음을 주는 포인트가 더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육갑을 소개할 때 랩을 펼쳤는데 그것도 본인의 아이디어인가.

“그렇다. 원래 그를 소개하는 대사는 세 줄 정도였다. 뭔가 밍밍했다. 그래서 왜 이름이 육갑일까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육갑이라는 이름처럼 이 친구는 육십 간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내용을 적어 감독님에게 보냈더니 대사를 스무 줄로 늘려서 보내오셨다. 너무 길었지만 재밌는 장면이라 뺄 수 없다고 하더라. 결국 그 긴 대사를 대화하듯 내뱉을 수는 없어서 리듬을 넣어 랩으로 처리했다.”

▶이 영화가 흥미로웠던 건 열녀에 대한 접근부터 당시 터부시되던 여러 시대적 상황들을 코미디 장르로 잘 녹여냈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 영화를 제목만 듣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 기방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야하고 난잡한 것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보면 아시겠지만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착한 영화다. 그런 부분들을 무겁지 않게 코미디로 풀어간 것도 주효했다. 단순히 웃기기만 하고 끝났으면 여운을 남기기 힘들었을 텐데 뒤에 잔잔한 사랑 얘기로 마무리를 지어주니 더 세련되고 깔끔한 느낌이다.”

▶허색과의 브로맨스 이상으로 난설(예지원)과의 로맨스도 좋았다. 좀 더 분량이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편집된 부분이 꽤 있다. 난설은 물론이고 허색, 유상(공명)과도 꽤 큰 시퀀스가 있었는데 편집됐다. 지금의 결과물이 최선이라고 판단해 감독님이 결정한 부분이겠지만 솔직히 배우입장에선 좀 아쉽긴 하다.”

▶극 중에선 연애론에 빠삭하고 제대로 그것을 활용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실제의 성격은 어떤가.

“자상한 성격은 아니다. 말도 별로 없고 무뚝뚝하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다. 아무래도 배우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변한 것 같다. 오죽하면 극단에서 처음 활동할 때 내 별명이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였겠나. 극단에 있으면서 출근하고 퇴근할 때 하는 인사를 빼면 거의 말없이 조용히 지냈다. 그래서 지금의 나를 보면 신기하다. 이런 성격인데 어떻게 연기를 하게 됐는지.”(웃음)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됐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집에 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전주에 붙어있는 단원모집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유심히 살펴 봤다. 연기경험이 전혀없는 사람도 지원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어서 전화번호를 외웠다. 그때는 휴대폰이 있는 시대가 아니어서 집에 가자마자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걸었다. 와보라고 하더라. 다음 날 갔다. 공연장은 처음 가봤는데 그날 마침 공연을 하고 있었다. 1인극인데 공연을 보면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 본 연극인데 보는 내내 전율이 느껴졌다. ‘아! 이런 세계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바로 그곳에서 연습생으로 출발했고 이후 1997년 연극 ‘종이연’으로 데뷔했다.”

▶당신의 장점 중 하나는 어떤 배우를 만나도 호흡이 좋고 배우를 잘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든 잡히지 않든 모든 장면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는 편이다. 내가 등장하는 장면을 잘해내기 위해선 내가 나오지 않는 장면이라도 상대 배우가 집중할 수 있게 상황을 만들어줘야 한다. 내 연기 지론이기도 한데, 가급적 상대배우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려고 한다. 그게 오히려 편하다. 그리고 상대방이 편하게 느껴야만 나도 그 배우에게 뭔가를 요구할 수 있다. 그렇게 맞춰주다보니 어떤 배우를 만나도 쉽게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지점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이준호와의 호흡은 어땠나. 요즘에는 아이돌 가수 출신이 꼬리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정통파 배우로서 그들을 대하는 느낌은 아무래도 다를 것 같은데.

“과거에는 가수들이 연기하는 것에 대해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영화나 드라마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그 사람들이 모든 면에서 나보다 훨씬 낫다는 거다. 시기와 질투심이 날 정도로 모든 방면에서 월등하다. 나는 연기만 할 줄 알지 그 사람들처럼 춤과 노래는 전혀 할 줄 모른다. 게다가 그들은 엔터테이너의 재능과 자질까지 갖추고 있다. 연기라는 것이 단순히 연기만 하면 되는 건 아니다. 연기하면서 춤과 노래를 할 때도 있다. 특히 엔터테이너적인 부분을 나에게 요구한다면 나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부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최근 2~3년간 쉼없이 달려왔다. 그만큼 시장과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얘기인데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나.

“대중적인 인기는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간혹 식당에 가면 서비스가 좀 더 나오긴 하지만 길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여전히 드물다.(웃음) 대신 과거에 비해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고, 그것을 이제 초이스하는 입장이라는 점에선 분명 달라졌다. 동시에 역할과 비중이 커지면서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도 생기고 그에 따른 부담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시나리오를 좀더 신중하게 접근하게 되고, 간혹 거절하는 경우가 생길 때는 너무 미안하다.”

▶거절하는 이유는 뭔가.

“그 역을 잘해낼 수 없을 것 같아서다. 혹은 전작 캐릭터와 겹쳐진다거나 기존에 해왔던 역할과 너무 비슷하면 거절하는 편이다. 물론 제작자나 감독들은 배우의 전작들을 보면서 안정적으로 가려고 하겠지만 최소한 내 입장에선 옳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작 ‘롱 리브더 킹: 목포 영웅’의 경우를 보더라도 내가 맡은 국회의원 역은 이미 많은 영화와 드라마, 연극무대를 통해 대중에게 노출됐다. 전형성을 탈피해서 새롭게 보여줄 자신이 솔직히 없었다. 그래서 출연을 망설였는데 결과적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그에 비해 이번 작품은 자연스럽게 관객 모드로 몰입하면서 본 것 같다. 육갑은 흔한 역할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내가 만들어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엄격한 것 같다.

“나에게 관대하지 못한 건 그만큼 부족한 게 많아서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연기 욕심과 승부 근성이 꽤 있는 편이다. 그래선지 결과를 보면 항상 부족하고 아쉽다. 사실 ‘기방도령’도 작품 전체가 좋았던 거지 육갑 캐릭터만 따로 떼서 보면 역시나 허점 투성이다. 좀더 고민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컸다.”

▶그 말은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게 많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가.

“한때 유명해지고 싶었다. 동료 배우들이 잘될 때 ‘나는 왜 안될까, 저 사람과 나는 별로 다를 게 없는데’라는 부러움과 질투심을 가졌다. 배우로서의 역량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남들 잘 되는 것만 마냥 부러웠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금은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연기만큼은 최귀화’라는 얘기를 들어보는 게 소원이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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