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전남 신안 천사대교 다이아몬드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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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2   |  발행일 2019-07-12 제37면   |  수정 2019-07-12
천사대교 건너 닿은 푸른 바다위 섬…다이아몬드 보석이 되어 기억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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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좌도에서 본 화폭같은 앞바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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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좌도에 있는 화가 김환기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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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좌도와 박지도 그리고 반월도를 잇는 퍼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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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은도의 분계해수욕장 해변에 있는 여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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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의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웅장한 천사대교.

다리 이야기만 나오면 기욤 아폴리네르 시(詩) ‘미라보 다리’가 어렴풋하다. 미라보 다리에서 내려 보는 센강은 파괴와 미학(美學)으로 흐른다. 시나브로 시간도 사랑도 사라지는 것. 고정된 다리와 그 아래로 흐르는 강물. 고통과 기쁨. 그리고 나. 1960년대 인기 샹송 미라보 다리를 듣는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허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손과 손을 붙들고 마주 대하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이/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흐르는 물결같이 사랑은 지나간다/ 사랑은 지나간다….’

드디어 천사대교를 건너면서 나는 애절한 샹송 시 음악에서 벗어났다. 전남 신안군 국도 2호선의 교량 천사대교. 늘 푸르고 건강한 섬 압해도에서 돌과 바위의 섬 암태도까지. 푸른 바다 위에 2019년 4월4일 개통됐다. 국내 최초로 하나의 다리에 사장교와 현수교가 동시 배치된 아름다운 다리다. 100% 국내기술로 만든 총 연장 10.8㎞다.

압해도∼암태도 10.8㎞ 잇는 천사대교 위용
50개 해변 9개 해수욕장 명품 휴양지 자은도
박가분 같은 백사장에 드러나는 발자국 흔적
8개섬 거느린 팔금도, 신안 제1교 건너 안좌도
가고 싶은 섬, 걷기 코스 두리∼박지도 로드
박지마을 할머니 간절한 소망 이뤄준 퍼플교
섬·사람·사랑을 묶는 다리걷기 환상의 경험

암태도로 건너가 천사대교 아래 전망대에 선다. 섬과 바다와 다리는 걷잡을 수 없는 세마치 감동으로 밀려온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호흡이 벅차오른다. 어떤 싸구려 쾌락과 다른, 뼛속 깊이 출렁이는 물결 같은 것. 그런 야릇한 희열이 소용돌이친다. 이게 우리의 유전인자가 이룬 기술과 사랑의 정점이다.

그 푸른 바다 위 섬과 섬 사이, 다리는 어마지두 서 있고, 감정과 시간은 에너지가 되어 탱고를 춘다. 잠든 영혼에까지 스며드는 그 풍경, 그 허무를 관통하는 환호의 추상화에 나는 가슴까지 아릿하다. 아직도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소리 흥건한 전망대를 벗어나 암태도를 달린다. 에로스 서각 박물관을 지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남녀의 성에 대한 노골적인 해방과 표현이 있다. 그냥 지나친다. 암태도와 자은도를 잇는 은암대교를 건넌다.

자은도는 50개의 해변과 9개의 해수욕장이 있는 명품 휴양지다. 한꺼번에 다 볼 수 없으므로 먼저 분계해수욕장으로 간다. 자은도는 모래섬이다. 분가루 같은 모래가 퇴적하여 만든 박가분 섬이다. 자은도의 백산, 분계, 신성은 거의 모래땅으로 땅콩, 마늘, 양파, 대파가 늘 풍년이다. ‘백산 큰 애기 모래 서 말 묵어지야 시집간다’ ‘쌀을 묵거면 송장도 무겁다 해선께, 거가 경작지가 넓고 진흙땅이라 쌀이 조쿠만요. 잉.’ 지역민들의 말이다. 쌀 구경 어려운 다른 섬과 달리 풍요로운 섬이다.

분계해수욕장은 수령 200년 너볏한 소나무 숲이 있다. 명물인 여인송에서 사진을 찍는다. 여기도 요리쿵조리쿵한 전설이 있다. 곱디고운 백사장을 걷는다. 우각도와 먼 섬들, 섬들의 고향이라 이르는 신안 천사의 섬. 섬은 별들의 무덤이다. 섬은 여행객들의 공동묘지다. 여행객은 섬에 자기의 얼굴을, 그리고 영혼을 묻는다. 바다가 얼마나 잔잔한지.

물결 잔잔한 다뉴브 물결. 헝가리 부다페스트. 그 노래가 무색하도록 다뉴브 강의 머르기트 다리. 허블레아니호(인어의 뜻)의 비극. 가족애가 유난한 한국인, 가족단위의 여행에 참사를 당한 분들. 헝가리인들이 머르기트 다리 위에서 추모의 장미꽃을 강물에 띄워 보낸다. 한국어로 부른 슬픈 아리랑 합창이 다뉴브 강 위에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그 다리 위에서 띄운 꽃은 언젠가 섬에 닿을 것이고, 섬은 또 꽃의 무덤이 될 것이다.

박가분 같은 백사장에 드러나는 발자국, 어릿광대 분칠 같은 흔적들. 얼마나 덧없고 허무한지, 곰비임비 바람의 시간이 속살거린다. 환각을 지우고 돌아 나온다. 다른 섬을 더 보려면 시간을 벌어야 된다. 자은도의 최고 산 두봉산이 보인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저 산은 예부터 말봉산이라 했는디, 시방은 두봉산이라 그라던마요. 암태 되봉산도 승봉산이라, 글고 천지개벽 할 때 저 산이 말(斗)만큼 남았는디 그래서 말봉산. 암태 되봉산은 되(升)만큼 남아서 되봉산이라 부른당께요. 그것이 솟았는가. 물이 가랑 졌는가 모른디, 그래 갖고 섬이 된 거요. 비결이 그렇게 되야 있어요.’

자은도는 바다였던 곳이, 모래가 쌓여 육지가 된 곳이 많다. 그래서 어느 섬보다 모래가 아름다운 섬이다. 새앙 섬이라는 푸른 무인도를 키우고 있는 백길해수욕장도 들린다. 바람, 새 따라 흔들리고 흰 파도 따라 핀다는 갯메꽃이 탐스럽다는 백길해수욕장. 아슴아슴한 명사십리가 은박지처럼 눈부시다. 바다 너머 점점의 섬들. 희미한 안개 스민 풍경에 낮게 날갯짓 하는 바다 새. 섬과 바다는 영락없는 어깨방아다.

다시 암태도로 나온다. 일제감정기 때 소작인 항쟁 기념탑을 지나고 중앙대교를 건너 팔금도에 들어선다. 여덟 개의 섬을 거느리고 있어 팔금도라 한다. 선학산 채일봉 전망대가 이내처럼 아스라하다. 새처럼 생긴 금당산 아래를 그냥 달려 안좌도로 향한다. 신안 제1교를 건너 안좌도로 들어간다. 세계적인 추상화가 수화 김환기 생가에 들린다. 그의 작품은 영락없이 고려청자 점 그림이다. 그의 예술 혼은 원초의 힘이고 생짜 에너지다. 그가 화폭에 찍은 반점은 영적 경험의 환영이다. 순간순간의 삶을 섬과 별로 나타내었다. 즉 자신이 그리는 추상의 점은 섬과 별의 각설이 품바다. 추상이지만 현실이고, 현실보다 더 현실이다.

좀 무더웠지만 돌아 나와 가고 싶은 섬, 걷기 코스, 유혹의 안좌도 두리∼박지도 트레킹 로드로 간다. 퍼플교(Purple Bridge) 들머리 안내를 본다. 박지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김금매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은 살아생전 박지도 섬에서 목포까지 두발로 걸어서 가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하늘을 움직였을까. 2007년 신안의 신활력 사업으로 두리∼박지∼반월도에 옴니암니 보라색 목교가 놓였다. 반월도, 박지도가 보라색 꽃과 농작물이 풍성하고 사계절 꽃이 핀다는 1004의 의미로 퍼플교로 불리게 되었다. 그 자색의 나무다리, 그 아래로 간조의 갯벌이 알몸을 드러낸다. 그 원시 갯벌은 영혼을 울린다. 생 체험의 가락으로 중모리 한다. 가까스로 햇빛이 반사되는 웅덩이는 멸치 떼처럼 반짝인다. 점차로 넓어지는 갯벌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언어의 그림처럼 풍경은 참 아득한 말씀이다. 눈이 가물거리는 바다와 하늘, 섬의 소실점에 늘 이름이 지워져가는 망각의 주술이 있다.

섬이 바가지를 닮아 바기, 배기, 박지라고 부르는 섬에 닿았다. 경관은 여전히 아름답고 바람이 나무 잎을 흔드는 허밍에 나는 나를 벗어나고자 하는 자신의 그림자를 잡으려고 이마에 힘줄을 세워야 했다. 박지∼반월도 구간 915m 퍼플교를 걷는다. 물 쓰면 갯벌의 형해화가 되는 섬과 섬 사이. 나 자신을 이어온 의식의 띠처럼 퍼플교는 나에게 축복과 사랑의 띠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게 한다.

다리는 섬과 섬을 묶고, 섬과 사람을 묶고, 사람과 사랑을 묶는다. 옴나위없는 다리걷기에서 여행의 환상경험을 그지없이 느낀다. 시시콜콜 미주알 고주알 앙바툼 하던 삶이, 여기선 그게 아니다. 일종의 엑스터시 같은 물활의 코러스. 생존의 밀림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가지기 위해 아귀다툼으로 살아 온, 어처구니 없었던 나에게, 나는 이제 도리질하며 내가 그럴 리가 없다고 타이르고 오싹해 한다.

반월도의 달그림자 같은 땅을 밟고나서 되돌아 나온다. 이럭저럭 답사를 마무리해야 한다. 다시 천사대교를 건넌다. 신안 ‘다이아몬드제도’라 부르는 자은도·암태도·팔금도·안좌도의 답사는 다이아몬드 보석이 되어 기억에 저장되고, 내면의 방울소리가 되어 왱그랑거릴 것이다. 나는 내 속에, 저 섬사이 갯벌처럼 물때따라 숨었다가 나타나고 그러면서도 생명을 키우고 살게하는 그런 사랑의 갯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오늘 트레킹을 마무리 하면서 넋두리한다. 언제나 처음처럼 사랑해서 미안해요. (시인·대구힐링트레킹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 대우여행사 이사

☞ 문의 : 신안군청 문화관광과 (061)240-8357~9

☞ 내비 주소 : 전남 신안군 압해도 및 천사대교

☞ 트레킹 코스 : 압해도-천사대교-암태도-자은도-암태도-팔금도-안좌도-팔금도-암태도-천사대교-압해도

☞ 주위 볼거리 : 자은도 해넘이길, 자은도 두봉산 등산로, 암태도 추포 노두길, 암태 노만사, 팔금도 삼층석탑, 안좌도 화석 광물 박물관, 읍동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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