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대통령’ 호칭을 바꾸면 어떨까

  • 송국건
  • |
  • 입력 2019-07-08   |  발행일 2019-07-08 제30면   |  수정 2019-07-08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
한명도 예외없이 말년불행
권위적통치자 뉘앙스 담긴
대통령 명칭바꾸자는 의견
솔깃한 건 푸닥거리 심경?
[송국건정치칼럼] ‘대통령’ 호칭을 바꾸면 어떨까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 헌법에 보장된 막강한 권한에, 통념적으로 따라붙는 무소불위의 정치권력이 결합해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 된다. 대통령 개인에게 무작정 좋은 건 아니다. 차서 넘치는 권한과 권력을 주체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지낸 인물은 모두 11명이다. 이 중 정권과 정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였던 2명(윤보선·최규하)을 제외한 9명 모두 말로가 좋지 않았다. 해외망명을 하거나(이승만), 측근의 흉탄에 쓰러지거나(박정희), 법정에 서거나(전두환·노태우) 하면서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들이 구속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이나 보석 상태로 재판 중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퇴임한 지 30년이 다 돼가는데 지금도 법정에 불려다닌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단 한 명도 성한 상태로 임기를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건 사람의 문제가 아니란 의미다. 제왕적 권력을 가능케 하는 제도, 승자독식이 돼버리는 관습의 문제이기 때문에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만으론 주체가 어렵다. 이는 불행한 대통령이 잇따라 나오는 악순환의 고리가 언제 끊어질지 알 수 없음을 의미한다. 정치권 단골메뉴인 권력분산형 개헌은 정파싸움에 막혀 있다. 천신만고 끝에 개헌이 이뤄진다고 해도 관습이 같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럴 것 같지 않다. 정권만 잡으면 전임정권에 칼을 대니 누가 먼저 아량을 베풀지의 문제가 돼버렸다. 권력을 새로 잡은 쪽에선 자기 주변에 칼 맞은 사람들이 있으니 다시 칼을 빼든다. 뭔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찾아서 실천하고 분위기를 바꾸며 개헌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왔는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아이디어 하나를 화두로 던졌다. ‘대통령’ 명칭을 한번 바꿔보자는 제안이다.

박 시장은 “대권, 대선, 대통령이라는 이름은 바꿔야 한다. 옛날에는 구세주를 원했다. 세상이 어지러우니 강력한 리더를 원하는 풍조도 없는 건 아니지만 21세기는 한 사람이 모두를 이끌고 가는 시대는 아니다”라고 했다. ‘대권’(大權)은 뉘앙스부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무소불위 권세가 읽힌다. ‘대통령’(大統領)을 한자 그대로 풀어보면 ‘통치(統)의 우두머리(領) 중에서도 최고(大)’라는 뜻이다. 합중국인 미국의 국가원수를 뜻하는 영어 ‘President’가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으로 쓰이게 된 이유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다. 유력한 어원설은 19세기 일본 에도 시대 말미의 ‘통령’이라는 관직에서 따왔다는 거다. 큰 나라인 미국을 예우한다며 여기에 ‘대’(大) 자를 붙였고, 1853년 필모어 대통령의 친서 번역본에서 처음 쓰였다고 한다.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도 국가수반으로 대통령을 두고 이승만을 선출했다.

‘대통령’이 일본에서 시작된 용어라면 미련없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명칭변경이 쉬운 일은 아니다. 헌법 제4장1절이 ‘대통령’ 규정이니 헌법조문부터 바꿔야 한다. 대통령을 대체할 명칭은 박 시장이 시민공모를 언급했지만 마땅한 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건 최고통치자의 명칭을 바꾼다고 그것만으로 당장 권력을 올바로 행사할 리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명칭 변경 아이디어에 귀가 솔깃한 건 ‘대통령’이란 단어에 독재, 독선, 불통, 편가르기 같은 부정적 이미지들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모든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갈 땐 멀쩡했지만 나올 땐 상처투성이였으니 국민 입장에선 대통령 리스크를 안고 사는 셈이다. 명칭을 바꾸기도 어렵고 바꿔서 단번에 변하는 건 없겠지만 푸닥거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