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공간과 기억으로서의 대구를 생각한다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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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03   |  발행일 2019-07-03 제31면   |  수정 2019-07-03
[박재일 칼럼] 공간과 기억으로서의 대구를 생각한다
광고사업국장

모처럼 광주를 다녀왔다. 대구시와 광주시는 근년들어 ‘달구벌’과 ‘빛고을’의 합작에 공을 들인다. 영남일보와 광주일보가 기획한 ‘달빛소나타’도 그런 프로그램이다. 대학생들과 함께 1박2일 몸을 실었다.

광주는 뭉클한 곳이다. 5·18 때문이다. 전남도청과 경찰국이 있던 그곳은 옛 건축물의 공간을 그대로 두고 역사의 기억을 가미해 탈바꿈했다. 바로 앞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주축으로 광화문 광장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도시광장까지 탄생했다. 거의 조(兆)단위 국가예산이 투입됐다는 점에서 논란이 없지 않고 타지인으로서 다소 시기심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광활한 공간을 보존하고 한편 확장한 그 작업이 놀라웠다.

도시는 무엇인가. 도시는 공간과 기억의 산물이다. 밀집한 도시는 서로 어울려야 불안하지 않은 인간 본성을 위로하는 안식처다. 밀집해질 수밖에 없다. 1천만 인구도시 서울이 대표적이다. 밀집의 강도에서 대구는 서울보다 낫다고 할지언정 만족하기는 어렵다. 공간은 똑같이 아파트로 밀도화된다. 쉴 광장은 없다. 그나마 국채보상공원, 2·28기념중앙공원마저 없었다면 대구 도심은 거의 꽉 막혔을 것이다. 대구뿐만 아니지만 대한민국 대도시 전부가 20년 도시계획 공원을 방치해 지금 허둥대는 것을 상기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도시 공간 확보에 게을리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현대 도시는 ‘끝없는 공간 확보’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믿고 있다.

이런 분야의 전문가인 권상구씨(시간과 공간 연구소 이사)도 그런 주창을 하는 것으로 안다. 그가 말했듯이 도시가 스스로의 기억을 부숴버린다면 굉장히 허망할 것이다. 도시의 시간은 역사일 게다. 도시는 집단의 역사적 기억으로 존재감을 표현한다.

대구시는 근년들어 공간 확보와 기억을 가미한 몇몇의 도시 현장들을 재창조했다. ‘김광석 길’만 해도 그곳이 유명가수의 단순한 탄생지였다면 도시민이 대규모로 찾는 공간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6·25전쟁통에도 살아 숨쉬던 방천시장의 때가 낀 기억이 있기에 역사성과 장소성을 확보한 공간이 됐다. 미국 선교사들이 터전을 닦고 3·1만세운동길이 됐고, 다행히도 지금까지 흔적을 가져 기억을 복원한 청라언덕도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 화려한 가로등길을 거쳐 전국 최고의 공구골목 역사를 간직한 북성로에도 진실로 의미있는 작업이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근대골목이란 도시복원 작업에 몰두한 윤순영 전 중구청장의 노력들은 일종의 업적이다.

10여일 전 친구들과 대구FC프로축구장 DGB대구은행파크를 찾으면서 새삼 감탄했다. 축구장과 인접한, 대구시민의 애환을 녹인, 70년 역사의 야구장에는 서울에서 온 리틀야구단이 지역팀과 경기하고 있었다. 옛 정취를 보존하면서 야구장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만약 이곳 옛 시민운동장과 야구장을 허물고 아파트를 지었다면 끔찍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성동 일대는 진화하는 듯하다. 인근의 삼성창조캠퍼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삼성의 발상지 제일모직의 역사가 일정부분 보존되었기에 그 공간은 의미를 배가한다.

대구시청사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중구 공평동의 현 청사를 옮기느냐에서부터 옮긴다면 어디로 갈 것인지로 여론마저 분열된다. 그런 논란을 지켜보면서 행여 우리가 품어야 할 중요한 도시의 개념들을 놓치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구(舊)도심의 보존과 함께 대대적 공간 확장을 바란다. 설령 시청사가 다른 곳으로 옮기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시청 앞 건물들을 사들이고, 시의회의 건축물과 역사적 기억을 지키면서 인근 국채보상공원과 연계된 명실상부한 대구 도심광장을 완성해야 한다고 여긴다. 마찬가지로 북구의 옛 경북도청이나 달서구의 옛 두류정수장, 달성군이 희망하는 공간들도 도시의 역사적 기억을 품는 동시에 도시 전체의 밀도를 줄여주는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믿는다.

광주에서 북대구로 진입하면서 버스 차창으로 바라본 금호강의 하중도는 녹색으로 눈부셨다. 700억원 이상 들여 확보한 강속의 섬이다. 도시공간이다. 어설프게 구조물을 넣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공간과 시간으로서의 대구를 다시 바라봤다. 광고사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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