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재미가 최고입니다

  • 최소영
  • |
  • 입력 2019-07-01 08:08  |  수정 2019-07-01 08:10  |  발행일 2019-07-01 제18면
공부습관 기르기 위해선 ‘잘하나’ 대신 ‘좋아하나’ 물어야
20190701
일러스트=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몇 가지 물어볼 테니까 한 번 대답해보세요.

여러분은 손흥민 선수만큼 축구를 잘하나요?

여러분은 류현진 선수만큼 야구를 잘하나요?

여러분은 유명 피아니스트만큼 피아노를 잘 치나요?

여러분은 유명한 가수만큼 노래를 잘 부르나요?

모두들 ‘아니요’라고 대답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쳐서 물으면 달라질 겁니다.

여러분은 손흥민 선수만큼 축구를 좋아하나요?

여러분은 류현진 선수만큼 야구를 좋아하나요?

여러분은 유명 피아니스트만큼 피아노 치기를 좋아하나요?

여러분은 유명한 가수만큼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나요?

아이들에게 꾸밈없이 시 쓰기 권해
즐기는 것은 등수·성적과 상관없어
초등학교는 공부 습관 형성하는 곳
재미 느껴야 또 하고 싶은 마음 생겨



사람마다 대답이 달랐을 겁니다. ‘예’도 있고, ‘아니요’도 있고 ‘글쎄요’도 있을 테니까요. 맞아요. 손흥민 선수만큼 축구를 못하지만 더 좋아할 수도 있어요. ‘나는 축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손흥민 선수만큼 못하니까 기가 죽어서 이제부터는 축구를 안 할 거야’ 이런 사람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좋아하는 축구를 못하고 살지도 몰라요. 축구도, 야구도, 피아노도, 노래도, 달리기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등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며칠 전에 대구 금포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 초청을 받아 아이들과 글쓰기 공부를 한 적이 있었어요. 아이들은 모두 16명이었지요.

시 쓰기 공부부터 했습니다. 먼저 아이들에게 물어봤지요. “여러분은 작가나 시인만큼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하고 말입니다. 아이들 모두는 “아니요”라고 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주눅이 들어 글쓰기를 하지 말아야 할까요?” 하고 다시 물었지요. 역시 “아니요” 하고 힘차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시 쓰기를 하는데 ‘잘 쓴다’ 혹은 ‘1등이다’ 하는 게 필요할까요?” 하고 물었지요. 역시 “아니요”라고 씩씩하게 대답을 했어요. 참으로 기특하고 대견해서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자기가 겪은 일을 누구에게 들려주듯이 꾸밈없이 써보자고 했지요.

아이들은 망설이지 않고 쓱싹쓱싹 잘도 썼습니다. 어디에도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게 말입니다. 그 때 써낸 아이들의 시를 한번 맛볼까요?

‘백일장과 우리학교’

금포초등 5년 정민서

백일장과 그림대회

사람도 많고

부스도 많다.

부스의 종류는

VR체험, 팝콘만들기, 솜사탕 만들기, 풍선 아트….

그림대회가 시작하니

사람들은 다들 조용

떠드는 학교는

우리학교뿐이다. 2019.5.16

백일장과 그림대회 행사장에 갔을 때 겪고 느낀 것을 아주 솔직하게 썼습니다. 부스도 많고 사람이 많아서 아주 시끌시끌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행사가 시작되니 다들 조용해졌는데 민서네 학교 아이들만이 분위기도 모르고 떠든 모양이지요. 그래서 부끄러웠다는 말입니다. ‘부끄러웠다’는 말을 직접 쓰지 않았지만 민서 마음을 알 수 있잖아요.

‘아이스크림’

금포초등 5년 김학찬

어린이날에

주상절리에서

아이스크림을 샀는데

내 혀에 붙였다.

손을 떼도 붙어있었다.

내 혀가 없어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빨리 먹었다. 2019.5.9.

아이스크림 먹는 기쁨을 더 오래 즐기려고 혀에 붙여도 보고 손을 떼어도 보는 장난을 했네요. 그런데 혀가 얼얼해지면서 감각이 없어지네요. 즐기는 것도 좋지만 감각이 없어지면 안 되지 하고 얼른 먹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내보인 시 두 편은 아주 잘 썼다고 내 보인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시는 잘 쓴다, 못 쓴다, 1등이다, 2등이다 하고 가름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재미있으면 됩니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모든 공부가 다 그렇습니다. 초등학교 교육목표는 ‘기본생활습관형성’입니다. 그러니까 공부를 잘 하는 아이를 기르는 곳이 아니라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습관은 어떨 때 생기느냐 하면 같은 일을 하고 또 하고 되풀이하면 생깁니다. 여러분은 어떨 때 되풀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던가요? 재미가 있어야 하고 또 하고 싶어집니다. 거기서 습관이 길러지는 거지요. 1등하고 100점 맞고 한다고 공부하는 습관이 길러지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때요?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게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할 수 있겠지요?

(윤태규 전 대구동평초등학교 교장·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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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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