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정치인의 말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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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7   |  발행일 2019-06-27 제31면   |  수정 2019-06-27

말은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음성기호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도, 끼리끼리 어울려 만단정회(萬端情懷)를 풀 수 있는 것도 언어라는 생각의 전달도구가 있기 때문이다. 원로 언론학자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는 “말은 생각의 외출”이라 했고, 레이는 “말은 마음의 초상”이라고 설파했다.

정치인에게 말은 무기다. 그래서 정치판엔 언어유희가 난무한다. 하지만 무기는 엉뚱하게 자기진영에서 터지기도 한다. 2011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말해 역풍을 맞았고,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성형 안한 여성을 ‘자연산’으로 표현해 구설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의 청년층 지지율 하락을 두고 “전 정부의 반공교육 탓”이라고 한 홍익표 수석대변인의 유체이탈 화법도 자폭에 가깝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아들 스펙 논란에 대한 어설픈 해명이 되레 청년들의 반감을 키웠다.

정치인의 언어는 간명하고 강렬하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박정희 독재시대 야당 지도자 김영삼이 날린 묵직한 돌직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08년 총선에서 친박계 의원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하자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어록을 남겼다.

촌철살인의 풍자와 패러디는 현실정치의 정곡을 관통한다. 노회찬 의원은 생전에 “오래된 불판을 갈지 않으면 삼겹살이 탄다”며 정치혁신을 주문했고, 문희상 국회의장은 “악마는 당리당략에 있다”며 정당이기주의를 경계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한국당이 국회 복귀 합의를 2시간 만에 번복하자 “봉숭아학당 같다”고 저격했다. 통합대구공항을 가덕도신공항을 위한 ‘떡밥’으로 묘사한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의 통찰력도 평가받을 만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국당의 인재 영입 대상 명단에 김연아·박찬호·백종원 등 셀럽들의 이름이 올랐다. 한데 본인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이름을 언론에 흘렸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침 바르기’란 비아냥까지 나왔다. 그러자 이명수 한국당 인재영입위원장은 “이것은 짝사랑 리스트”라며 선을 그었다. 살짝 위트가 있는, 밉지 않은 변명이다. 정치인의 유쾌한 패러디는 정치판의 윤활유 역할을 넘어 국민을 웃게 한다. 아무래도 막말보단 의표를 찌르는 풍자가 더 센 듯싶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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