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文 “6·25는 북한의 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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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6   |  발행일 2019-06-26 제30면   |  수정 2019-06-26
文대통령의 예상밖 발언엔
한반도 주변 큰 변화 느껴져
北美中日 틈새 눈치만 볼판
그동안의 행보와는 다르게
이제는 바꿔야하는 게 운명
[수요칼럼] 文 “6·25는 북한의 침략”

눈을 의심했다. 내가 잘못 봤나 싶었다. 24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군과 유엔군 6·25 참전유공자를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6·25는 비통한 역사지만 북한의 침략을 이겨냄으로써…”라고 했다. 천안함 폭침을 인정하는 것조차 그토록 인색했던 문 대통령이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북한 김정은이 들으면 펄쩍 뛸 이야기를 했다. 북한은 6·25를 미국과 남조선이 ‘북침’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이 항미원조(抗美援朝)에 나선 덕에 미 제국주의자를 물리쳤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남침’이라니.

남북관계가 조금이라도 흔들릴까봐 노심초사하는 문재인정부다. 얼마전 삼척항에서 발생한 ‘해상 노크 귀순’에 대해서도 쉬쉬하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하고 있다. 지난 6일 현충일엔 문 대통령이 ‘김원봉은 국군의 뿌리’라는 식으로 발언하는 통에 많은 군경 유가족들의 가슴에 피멍이 맺히기도 했다. 그런데 경천동지할 일이다. 지난 2년여를 북한 김정은 정권과 그토록 살갑게 지내다가 갑자기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헷갈린다. 문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변화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호의 문재인 선장은 해도를 똑바로 읽고 항로를 바로잡고 있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문 대통령의 “6·25는 북한의 침략” 발언 속에서 지금 한반도 주변에서 엄청난 변화가 진행 중이란 사실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일 시진핑 주석은 중국 주석으로는 14년 만에 처음 북한을 방문했다. 시 주석은 북한 김정은 체제의 ‘안전보장’과 북한의 ‘경제적 숨통’을 틔워주겠다고 약속했다. 북한은 더 이상 미국과 UN의 경제제재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게 됐다. 문재인정부의 호의도 이젠 별것이 아니다.

지금 중국은 미국과 사생결단의 싸움을 하고 있다. 20세기 1·2차 세계대전 못지않은 큰 싸움이다. 그레이엄 엘리슨의 ‘예정된 전쟁’은 패권국과 신흥 강국이 충돌할 경우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75%라고 한다.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딱 그 경우다. 미국은 중국의 굴기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기세다. 중국도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미국을 제치고 우뚝 서겠다는 각오다. 이미 ‘화웨이-대만-홍콩 문제’를 두고 미국과 중국은 거칠게 충돌하고 있다. 그런 중국에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천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 이젠 미국도 우리에게 거의 협박조로 요구한다. 더 이상 중국에 기웃거리지 말고 빨리 ‘한-미-일 삼각 동맹’ 틀 속으로 되돌아오라고 말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게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는 더 이상 ‘한반도 운전자’를 이야기할 처지가 못 된다. 링에는 오르지도 못하고 링사이드의 구경꾼으로 전락하게 생겼다. 미국과는 정말 데면데면한 사이가 됐다. 중국은 툭하면 우리를 겁박한다. 사드 보복에 이어 최근에 와서는 ‘화웨이 전쟁’에서 줄 똑바로 서라고 노골적으로 압박을 가한다. 일본과는 말만 이웃이지 전쟁이라도 할 판이다. 그토록 공을 들였던 북한은 이제 ‘중국 큰 형님’의 보호를 받게 되면서 우리를 아예 모른 척 무시할 것이 뻔하다. 우리는 그야말로 ‘게도 구럭도 다 잃고’ 눈칫밥 먹게 생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이다. 전통적 지지층의 요구와 다른 행보를 취해야만 하는 운명이 숙명처럼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2년 넘게 공들여 왔던 것들을 모조리 부정해야 할 기구한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도 문 대통령이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독선과 아집을 꺾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 더 바란다면 남북문제 등 외치뿐 아니라, 경제정책을 비롯한 내치에서도 잘못된 궤도를 과감히 수정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6·25는 북한의 침략”이란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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