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크고 작은 방과 큐레이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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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4 08:13  |  수정 2019-06-24 08:13  |  발행일 2019-06-24 제15면
[행복한 교육] 크고 작은 방과 큐레이션의 시대

지난 6월 초에는 우리학교 사서 선생님과 저, 서부고 선생님 두 분, 이렇게 네 명의 교사가 서울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학교도서관 환경 개선 사업 추진을 위한 선진지 견학이었는데요. 이틀 동안 한가람고 학교도서관, 삼청숲도서관, 아모레퍼시픽 본사 라이브러리, 서울도서관, 과학책방 갈다, 최인아 책방, 아크앤북 등을 들렀습니다. ‘교실 두 칸 크기인 우리 학교 도서관이 참고할 수 있는 뚜렷한 개성으로 가꾸고 채워진 공간인가’를 기준으로 삼아 견학지를 선정하였습니다. 책을 모티프로 하여 잘 가꾼 공간은, 그곳이 학교 안이든 밖이든 평범하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냅니다. 지식과 감동을 얻는 절대적인 위치에서 내려와 말 그대로 ‘올드’ 미디어가 되어가는 책의 가치와 가능성을 여전히 믿고 있는 공간 탐색하기는 참 즐거웠습니다.

먼저, 최인아 책방이 운영하는 ‘혼자의 서재’를 보고 학교 도서관도 ‘방’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혼자의 서재’는 이용료를 내고 정해진 시간 동안 온전히 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아름답게 꾸며진 공간을 자기 집 서재처럼 ‘개인화하여’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공간입니다. 공공장소이지만 한 사람이 그 곳에 머무는 동안은 그만의 시간을 온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더군요. 학교에도 크고 화려한 건물이 무조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방’입니다. ‘방’의 주인은 교사와 학생들이고, 각기 다른 크기와 색을 지닌 ‘방’들이 만나 다양한 관계를 엮어가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요. ‘인생을 여러 종류의 공간을 통과하는 경험을 통해서 산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살아온 집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렇게 느껴진다. 집은 끝없는 여정 중에 거쳐 가는 그런 공간들이다.’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말입니다. 그의 말을 빌려 생각하자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나의 인생을 통과하는 여정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내 ‘방’은 그 여행에서 머무는 나만의 숙소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과거에 내가 살았던 집들은 행복하거나 치열하게 걸어온 내 지난 여행의 흔적입니다. ‘방’ 안에서만큼은 비로소 우리는 나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과학책방 ‘갈다’의 이름은 과학자 갈릴레이와 다윈의 이름 앞글자를 각각 따서 만들었습니다. 천문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이명현이 어린 시절을 보낸 단독주택을 고쳐 지은 곳인데요. ‘가볍게, 가깝게, 다정하게 과학을 만나는 공간’이라는 콘셉트로 큐레이션한 과학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곳은 사사키 도시나오의 책 ‘큐레이션의 시대’의 한 사례 같습니다. ‘큐레이션의 시대’는 비주류 음악인 월드 뮤직의 프로모터, 이름 없는 노인의 낙서에서 새로운 예술을 발견한 작가, 평범한 사물에 공감의 이야기를 불어넣은 안경점 주인, 낭만의 화가가 아닌 아방가르드 작가 샤갈을 조명한 미술관 큐레이터, 정신병자들의 그림을 아웃사이더 아트로 끌어올린 정신과 의사들, 그리고 독자의 참여를 통해 기성 언론을 뛰어넘은 인터넷 뉴스 매체 ‘허핑턴 포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큐레이터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주류 언론이나 학계, 혹은 대중들의 시선과는 별개로 자신만의 눈으로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내지요.

좋은 공간은 이야기를 만듭니다. ‘콘텐츠 큐레이션’은 수많은 정보를 자신의 관점으로 선별하고 해석하고 재배열하여 타인과 공유하는 행위입니다. 현대인은 이제 누구든지 정보를 골라서 재배열하고 의미와 맥락을 부여해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습니다. 큐레이션은 우리의 일상을 압도하는 과도한 정보를 정제함과 동시에 다양한 관점과 문화가 공존하는 생태계를 구축합니다. 아이들에게 ‘방’이 되어주고 ‘큐레이션’의 영감을 주는 공간, 학교도서관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 봅니다.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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