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임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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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1   |  발행일 2019-06-21 제43면   |  수정 2019-06-21
거리로 쏟아져 나온 홍콩시민 100만명에 울림 준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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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아니고 BTS(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도 아닌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니.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법 개정에 반대하는 홍콩 집회 현장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한국의 민중가요가 불렸다는 뉴스는 그만큼 놀라웠다. 지난 14일 저녁 경찰의 과잉 진압을 규탄하기 위해 홍콩 도심 차터가든 공원서 열린 ‘홍콩 어머니들’ 집회에서 한 여성 참가자가 기타를 들고 나와 전반부는 광둥어로, 후반부는 한국어로 이 노래를 불렀다. 그는 이 노래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라며 “영화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 등을 본 홍콩인들은 이 노래를 알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세상에, 민중가요에 이어 영화까지. 놀랍고 놀랍다.


광주 민주화 운동 노래 ‘임을 위한…’
홍콩 경찰 과잉 진압 규탄현장 등장
인권 변호사 노무현 일대기 ‘변호인’
5·18 운동 세계에 알린 ‘택시운전사’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 ‘1987’
민중가요에 이어 영화까지 영향 미쳐
中 공산당 정치탄압 민의와 분노 표출



2013년 12월18일 개봉한 영화 ‘변호인’(양우석 연출)은 1980년대 부산에서 활동했던 한 인권 변호사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맡았던 부림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극화했다. 무려 1천130만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모았다. 첫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양우석 감독은 1천만 감독이 되었고, ‘변호사 노무현’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는 이 영화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홍콩 개봉 당시 ‘역권대장(逆權大狀)’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는데 ‘역권’은 권력에 저항한다는 뜻이고, ‘대장’은 법정전문 변호사(Barrister)를 뜻하는 말이다.

2017년 8월2일 개봉한 ‘택시운전사’(장훈 연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동행한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고지전’ 이후 장훈 감독이 6년 만에 만든 신작이었고, 장 감독과 영화 ‘의형제’에서 작업한 바 있는 송강호가 택시운전사를 맡았다. 홍콩에선 ‘역권사기(逆權司機)’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는데 이는 “권력에 저항하는 운전사”라는 의미란다.

2017년 12월27일 개봉한 ‘1987’(장준환 연출)은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둘러싸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구를 지켜라!’라는 기상천외한 데뷔작을 만들었던 장준환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영화 ‘화이’에서 장 감독과 함께했던 배우 김윤석이 “수사관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희대의 망언을 뱉은 치안본부 대공수사처 처장을 연기했다. 홍콩에선 이듬해인 2018년 3월1일에 “권력에 저항하는 시민”이라는 뜻인 ‘역권공민(逆權公民)’이라는 부제를 붙여 개봉되었다. 이로써 권력에 저항하는 ‘역권 3부작’이 홍콩에서 완성된 셈이 되었다.

‘역권 3부작’이 언급되는 현장에서 울려 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1년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의 장시 ‘묏비나리’의 한 부분을 차용해 소설가 황석영이 가사를 쓰고 당시 전남대 학생이었던 김종률이 곡을 지었다. 1980년 5월27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중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노동현장에서 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노래다. 조악한 상태로 카세트 녹음기에 담겨있던 노래는 이후 빠르게 구전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노래가 되었다.

지난 9일에 있었던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는 주최 측 추산으로 무려 103만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2017년 기준 홍콩의 인구가 739만명이니까 홍콩 인구 7분의 1이 참가한 셈이다. 이는 홍콩이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역대 최대 규모 시위다.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156년 만에 반환된 이후 홍콩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일국양제 침해는 계속되고 있다. 중영공동선언에 일국양제, 항인치항(홍콩은 홍콩 사람의 손으로 통치해야 한다), 고도의 자치 보장을 넣었지만 덩샤오핑 이후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으로 올수록 중국 공산당의 홍콩 탄압은 더욱 강화되어왔다. 홍콩은 1997년 자치권을 획득한 이래 중국 정부가 부당한 정치적 탄압을 목적으로 홍콩의 반중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다는 걸 계산하고 범죄인 송환 국가를 철저하게 제한해 왔다. 홍콩 시민들은 이 법안이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보내는 데 악용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만약 홍콩 내에서 민주주의를 지지하거나 중국 공산당의 정치인을 비판하면 범죄인이 되어 중국으로 송환될 수도 있다. 조슈아 윙은 이번 시위가 있기 5년 전인 2014년, 79일 동안 대규모 시위대가 홍콩 도심을 점거한 채 홍콩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한 ‘우산 혁명’을 주도한 이다. 우산 혁명은 당시 시위대가 우산으로 경찰의 최루액 등을 막아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는 17세에 불과한 나이에 하루 최대 50만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를 이끌었다. 한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의 오랜 민주화 투쟁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서 “한국은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을 통해 군부 독재를 끝내고 민간 정부와 직선제를 쟁취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규모 도심 집회를 통해 정권 교체를 이뤄낸 촛불시위는 대단히 인상적”이라도 말하기도 한 그는 “한국인들이 촛불집회를 통해 정권 교체를 이뤄낸 것처럼 홍콩인들도 캐리 람(홍콩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통해 민의와 분노를 표출할 것”이라며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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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법안이 통과된다면 그간 일국양제로 위태롭게 지켜왔던 홍콩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끝날지도 모른다. 아직도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가는 걸까. 마치 공기마냥 당연하게 여겨온 시민적 권리를 누리기까지 누군가가 죽거나 다치는 아픈 희생들을 우리 역시 오랫동안 치르지 않았던가. 홍콩이 영국도 중국도 아닌 오롯이 시민의 것으로 돌아가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한 사람의 ‘동지(同志)’로 바랄 뿐이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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