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예천 보문사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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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1   |  발행일 2019-06-21 제36면   |  수정 2019-06-21
절집 축담에 널린 향나무 돌 꽉잡고 저리도 고른건 스님의 성품을 닮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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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가산 보문사. 의상이 창건하고 지눌이 중창했다. 지눌이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유명하다.

지눌이 3년, 다산이 1년, 그렇게 그 절집에 머물렀다고 했다. 예천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절집 보문사(普門寺). 무어가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을까. 산을 가르는 고속도로에서 벗어나자 금세 다시 산이다. 보문사는 학가산(鶴駕山) 자락에 위치한다. 안동과 예천에 각각 봉우리를 가진 산. 수레를 타고 날아가는 학과 같다고도 하고, 학이 앉았다 날아가는 형상이라고도 한다. 비행기도 없었던 시대에 학의 비행을 어찌 알았을까. 작은 소나무 군락을 지난다. 등 굽은 그들은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속병이 있을까, 모를 일투성이다. 곧 볕 좋은 자리에 놓인 채반 같은 땅이 열리고 텃밭 가지런한 절집이 나타난다. 스님은 너른 고추밭 길 가까운 고랑에 앉아 땅을 어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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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연못가에 자연석을 조각해 기단으로 삼은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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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수조. 가운데 맷돌은 아주 오래된 것으로 문화재라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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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3층 석탑. 고려 전기의 것으로 납작한 자연 암반을 지대석으로 삼고 있다.


의상대사가 숲 헤치고 가람 세운 곳
재난 만나 폐사, 고려때 지눌이 중창
장미꽃 문 속 높이 자리한 극락보전
고요한 연못가에 석조약사여래좌상
임란때 화마 이겨낸 반학루·3층석탑
19세 다산 정약용이 공부하며 머물러


◆ 보문사

주차장이 의외로 넓다. 신도의 규모를 가늠해 본다. 주차장 앞 절집의 축담에 향나무가 이불처럼 널려 있다. 몇 그루나 될까, 한 그루는 아니겠지.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축담 돌들을 꽉 잡고 있나. 어찌 저리도 고를까, 스님의 성정이 시킨 일이려나. 주차장 가장자리에는 약수를 받는 석조(石槽)가 있다. 연꽃무늬를 새긴 둥근 돌 수조 아래에 맷돌이 놓여 있고 그 아래는 사각의 수조다. 물은 말랐고 주변으로 바가지와 비눗갑, 앉은뱅이 의자 따위가 태평이다. 맷돌은 아주 오래된 것으로 문화재라는 기록이 있다. 여전히 쓰임이 있으니 다감한 마음이 든다. 뒤쪽으로 경내와 소통하는 계단이 있지만 잠깐 고민하다 뒤돌아 나간다.

절집 입구에 ‘사적비’와 ‘중흥대덕보선당대선사송덕지비’가 나란하다. 사적비에 따르면 학가산은 태백산맥의 줄기 가운데 아름답고 덕성을 갖춘 영산이다. 신라 문무왕 16년인 676년, 의상대사는 이곳에 천하의 신령함이 모이고 상서로운 기운이 널리 펼쳐져 있음을 발견하고는 구름을 꾸짖고 숲을 헤쳐서 가람을 세웠다고 한다. 보문사다. 그 후 여러 차례 재난을 만나 거의 폐사가 된 것을 고려 명종 15년인 1185년에 28세의 지눌스님이 중창했다.

사적비 옆에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산과 하늘의 물이 흘러들어 가득 차면 다시 흘러 나가는 구조다. 흘러드는 물 없고 나가는 물 없으니 연못은 고요하기만 하다. 연못가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있다. 자연석을 조각해 기단으로 삼은 것이 인상적이다. 곁에는 작은 보살입상이 있는데 뒤쪽에 깨어진 석조 광배가 있다. 보문사에 문화재라는 오래된 광배가 있다는데 그것일지 모른다. 조금 탁한 못물 너머 보문사 당우들이 한눈에 보인다. 그들 뒤로 뭉긋이 선 소나무들이 울창한 고요에 기대어 있다.

◆ 지눌이 깨달음을 얻은 곳

흐드러진 붉은 장미꽃 문 속에 극락보전(極樂寶殿)이 높이 자리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을 올린 건물로 조선 후기의 것이다.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라 전한다. 그 앞 왼쪽에는 2층의 한옥 구조인 염불당(念佛堂), 오른쪽에는 툇마루가 있는 적묵당(寂默堂)이 위치한다. 극락보전의 왼쪽에는 조사전(祖師殿), 오른쪽에는 삼성각(三聖閣)과 나한전(羅漢殿)이 자리한다. 그 외에 스님들의 거처가 두엇 된다. 작은 절이지만 나라의 보물도 있다. 보문사가 보유하고 있는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는 보물 제1958호다.

고려시대 보문사는 고려왕조의 사고(史庫)로 이용된 적이 있다. 지눌스님이 보문사를 중창할 당시 이곳에는 많은 경전과 논서(論書)들이 있었다고 한다. 절집을 세움과 동시에 방대한 경전들에 파묻혀 지낸 지 3년, 스님은 당나라 사람 이통현(李通玄)의 ‘화엄경’을 읽다가 ‘읽던 책을 머리에 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스님이 눈물로 얻은 깨달음이 ‘교(敎)와 선(禪)은 둘이 아니다’라는 것. 즉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었다. 일각에서는 보문사를 지눌의 주요한 사상이 확립된 곳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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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너른 고추밭 먼 이랑에 앉아 계신다. 참 부드럽게 움직이는 고요다.


◆ 다산이 10대의 마지막을 보낸 곳

보문사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대부분 불탔고 극락전과 반학루(伴鶴樓), 그리고 3층 석탑만 화를 면했다고 한다. 3층 석탑은 나한전 앞에 서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세운 고려 전기의 일반형 석탑이다. 납작한 자연 암반을 지대석으로 삼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원래는 지눌스님이 중창할 때 세운 것으로 당시 경내의 운계암(雲溪庵) 뜰에 있던 것이라 한다. 이곳으로 옮길 때, 저 평평한 바위도 함께 온 것일까. 혹은 무언가를 기다리며 오래 그 자리에 있던 것일까. 극락보전 뒤쪽에도 평 바위가 있고, 연못 한가운데에도 거북등을 닮은 바위가 있다. 어쩐지 모두가 원래 그 자리인 것만 같다.

반학루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정조 4년인 1780년에 1년간 공부한 곳으로 전해온다. 다산이 19세 때다. 그가 10대 후반에 아버지의 임지인 화순과 예천 등지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때일 게다. 다산은 9세 때 어머니를 잃었다. 어린 그를 지성으로 보살핀 이들이 큰형수와 서모(庶母)였다고 한다. 1780년은 다산의 큰형수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반학루 현판은 보이지 않는다. 2층의 염불당이 반학루가 아니었을까. 고종 때만 해도 운계암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반학루의 자취는 찾을 길이 없다.

건물의 처마 아래에 어린 풀꽃이 조르라니 심겨 있다. 처마의 낙수 자리에서 한 뼘 정도 물러 선 자리다. 낙숫물이 동전만 한 샘을 만들면, 힘내어 뿌리를 뻗으라는 듯, 그리 씩씩하게 자라라는 듯한 자리다. 어떤 꽃을 피우려나. 어느 비 오던 날 어느 처마 아래에 서 있다 손을 뻗었던 기억이 난다. 눈이 씻겨 맑아진 듯했다. 지금 보문사는 부처님 말씀의 사섭법(四攝法) 중 하나인 동사섭(同事攝)을 실천하는 도량이다. 사섭법은 ‘중생을 깨달음의 길로 이끄는 일’이며 동사섭은 ‘나와 남이 둘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제 스님은 너른 고추밭 먼 이랑에 앉아 계신다. 참 부드럽게 움직이는 고요가 내 손에 잡힌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55번 중앙고속도로 예천IC를 나와 예천읍 방향으로 조금 가다보면 보문사 안내판이 있다. 학가산 자락의 보문사길로 2.5㎞쯤 가면 소나무 숲길 지나 보문사가 나타난다.

◆ 정동진&환선굴 기차여행(무박 2일)=28·29일, 7월5·6·12·13일(매주 금·토 출발) 정동진, 환선굴, 삼척죽서루, 이사부사자공원, 묵호수산시장. 8만4천700원부터. 경산역, 동대구역, 대구역, 왜관역, 구미역, 김천역 탑승. <주>우방관광여행사 (053)424-4000

◆ 정동진&바다열차 기차여행(무박 2일)= 28·29일, 7월5·6·12·13일(매주 금·토 출발) 정동진, 바다열차, 추암촛대바위, 이사부사자공원, 동굴신비관, 묵호수산시장. 9만6천원부터. 경산역, 동대구역, 대구역, 왜관역, 구미역, 김천역 탑승. <주>우방관광여행사 (053)424-4000

◆ 제주도 여행= 23·24·25·26·27일 승마체험, 동백카멜리아 힐, 서귀포 해상유람선, 제주 워터 서커스쇼 등 포함 노팁, 노옵션. 1인 28만원부터. <주>우방관광여행사 (053)42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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