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은 현 정권의 국방의지를 의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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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1   |  발행일 2019-06-21 제23면   |  수정 2019-06-21

북한 어선이 동해바다와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한 해안부두까지 유유자적 들어온 상황은 안보 시스템에 큰 허점이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장관과 총리가 나서 공식 사과하고 재점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것으로 현 정권 안보·국방 의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지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0일 국정현안점검 조정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북한 어선의 이른바 ‘대기 귀순 사태’를 언급하고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사과했다. 이 총리는 “목선(木船)이 북방한계선에서 130㎞를 남하해 삼척항 앞바다에 대기했다 들어올 때까지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며 “경계체계와 장비 태세 등의 문제를 신속히 보완하고 잘못한 사람들에게는 엄정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도 앞서 19일 열린 전국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이번 사건을 경계작전의 실패로 규정, 지휘관들을 강하게 질책했다. 20일에는 대국민 사과문도 발표했다.

총리와 국방장관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책임 규명은 한편 당연한 것이지만 이번 사건은 경계작전의 실패를 넘어 군과 정부의 안이한 대처는 물론 국방태세에 대한 의구심마저 중폭시키고 있다. ‘57시간 레이더 포착 실패’ 등 기술적 부분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점은 귀순 사건을 접한 이후 군과 경찰, 통일부까지 거짓말과 말바꾸기로 정황을 희석시키려 한 대목이다.

군은 당초 “어선을 삼척항 인근에서 접수했다”고 밝혀 마치 바다에서 발견해 이를 인계한 정황으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주민들이 신고할 때까지 까맣게 모른 상황이었다. 또 북한 어선이 기관고장으로 떠내려 왔다고 했다가 추후 엔진을 가동해 움직였다고 정정했다. 북한 어선은 날이 밝을 때까지 대기하다 삼척항 부두로 접근해 접안했다. 더구나 부두에 산책 나온 주민들이 북한 어선에서 내린 이들과 대화하고 신고한 이후에도 늑장 대응으로 일관해 과연 군의 기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국민들이 의아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비판마저 나왔다. 대한민국 안보를 군(軍)이 아닌 어민이 지키고 있다는 야당 원내대표의 비판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야당에서 정 국방장관의 경질을 요구하고, 문재인정권이 북한과 맺은 남북군사합의 폐기를 요구하는 것은 이 상황에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경계의 실패가 대화와 국방태세를 구분하지 못한 현 정권의 느슨한 안보관에 파생돼 있는 것이라면 그건 굉장히 불길한 전조다. 행여 남북 대화와 대북 친화적 국방정책 탓에 ‘이제 적(敵)은 없다’는 환상과 나약함을 군에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국민은 걱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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