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의미 잉여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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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7 07:59  |  수정 2019-06-17 07:59  |  발행일 2019-06-17 제18면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의미 잉여의 언어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해도 어떤 예화로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1920년대 뉴욕에서 있었던 실화인데, 뉴욕의 어느 거리에서 맹인 한 명이 ‘나는 맹인입니다’라는 글자판을 목에 걸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모퉁이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못 본 체하고 지나갔지요. 시간이 흘러도 그의 동전 바구니에는 아직 이른 봄의 차가운 바람만 들락거릴 뿐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시인, 앙드레 불턴이라는 사람이 그 모습을 딱하게 여겼던지 그 글자판을 이렇게 고쳐줍니다. ‘봄은 왔건만, 나는 볼 수가 없습니다.’(Spring is coming but I can’t see it)

그러자 맹인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이젠 그에게 동전을 던져 주기 시작합니다. 주로 시적인 언어의 효용성에 대해 이야기 할 때나 또는 긍정적인 사고를 유발하여 설득의 한 방편으로 이야기할 때 사용하지요. 물론 이 정도의 표현으로 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적’인 것은 틀림없기에 시적언어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도 적당합니다.

그런데 꼭 이런 특별한 경우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언어적 의미의 특징으로도 여러 각도로 생각해서 글쓰기에 참고를 하면 좋겠지요.

이렇게 고친 문장에서 먼저 도와달라는 직접적인 강요가 아니라 간접적으로 에둘러 표현했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자기 주도적으로 느끼게 하였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긍정적인 말을 앞에 내세운 초점화 현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설득하는 효과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일반적이지 않은 언어의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행인들은 그가 평범한 맹인으로 보여지지 않아서 관심을 나타낸 것일 수도 있지요. 다시 말해서 이 시적인 표현은 그를 남다른 존재로 주목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이러한 몇 가지 경우의 의미가 생성되는 것을 ‘의미 잉여’라고 하는데 이 말은 ‘원래의 사전적(산문적) 의미나 그런 의미의 조합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의미의 생성’을 말합니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박현수 교수는 의미 잉여의 언어에는 세 가지 특성이 있다고 분류합니다. 첫째는 도구적인 산문적 언어에 반해 언어 그 자체에 주목하게 만드는 ‘자기 목적적인 언어’. 둘째는 명사나 동사 같은 품사만 주목되는 것이 아니라 조사, 부사 등 모든 문법적인 ‘언어 요소들의 평등주의’를 지향하며, 셋째는 검증될 의무가 있는 일반적인 언어에 반해 시적인 언어는 검증의 의무를 지지 않고 하나의 의미만을 나타내는 일의성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생성중인 기의’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봄은 왔건만 나는 볼 수가 없습니다’라는 표현은 구체적인 상황이 주어져 어느 정도 의미가 확정되긴 하지만, 여기에서 ‘도와 달라’는 의미 이상의 기의가 존재한다고 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나도 그 봄을 보고 싶다’ ‘나는 그 봄을 볼 수 없어서 슬프다’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 저 표현은, 그러므로 ‘나는 앞을 보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니 도와 달라’는 이 한 가지의 의지를 바탕으로 생성된 잉여의 미인 것입니다. <시인·전 대구시영재교육원 문학예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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