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롱 리브 더 킹:목포 영웅’ 김래원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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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4   |  발행일 2019-06-14 제43면   |  수정 2019-06-28
“여자 말 잘 듣는 순정남 목포 건달…현실은 낚시 빠져 결혼 못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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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돼서 내가 한번 확 바꿔볼라요.” 목포 최대 조직 보스 장세출은 용역 현장에서 만난 강단 있는 변호사 강소현(원진아 분)의 “먼저 좋은 사람이 되라”는 일침에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목포 일대 노래방과 PC방은 물론 조직의 마지막 보루인 나이트 클럽까지 정리하는 결단력을 보여준다. 최근 거칠고 선굵은 이미지로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김래원이 연기한 장세출은 그런 인물이다. “조직폭력배 보스가 여자의 말 한마디에 환골탈태해 국회의원까지 된다는 설정이 너무 동화 같고 비현실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끌렸다.”

동명의 인기웹툰이 원작인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은 전작 ‘범죄도시’로 마초적인 남성들의 액션을 화끈하게 보여줬던 강윤성 감독의 신작이다. 김래원이 이 작품에 끌렸던 것도 사실 강 감독과의 첫 만남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범죄도시’를 보고 그의 팬이 됐다는 김래원은 “작은 배역들까지 캐릭터를 살려내고 밸런스를 맞추는 능력이 정말 탁월했다”며 “이번에는 나를 맡겨 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함께 작업하는 과정에서 그를 더욱 신뢰하게 됐다는 김래원. 입도선매하듯 “이후 다른 작품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의사까지 미리 밝혔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현장이었다는 건 한결 편안하고 여유가 느껴진 그의 표정에서도 알 수 있다.

▶그간 보여준 마초적인 캐릭터 중에서도 유독 잘 어울렸다는 느낌이다.

“감독님이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잘 끄집어내서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동화 같은 이야기를 강윤성 감독님이 어떻게 풀어내실지 정말 궁금했다. 처음에는 ‘범죄도시’와 비슷한 액션물로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접했는데 두 번씩 읽어봐도 내 눈에는 멜로물로만 보였다. 멜로신이 많은 건 아닌데 영화 전체적으로 중요한 포인트를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제작사 대표님도 그렇고, 누구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유일하게 감독님만 ‘래원씨가 맞게 본 것’이라며 맞장구를 쳐줬다. 그렇게 감독님과는 첫 단추부터 잘 맞았다.”


폭력배 출신이지만 원래 선한 캐릭터
“먼저 좋은 사람이 되라” 변호사 일침
참회하는 심정으로 봉사하는 삶 변화
국회의원 자리까지 올라가 환골탈태
멜로신 많지 않지만 중요한 포인트
진심·간절함 드러난 연설장면 애정

조곤조곤한 말투로 연기 사이코패스
극한의 악 보여주는 인물도 맡고 싶어



▶장세출은 다소 비현실적인 인물인데 어떻게 캐릭터를 이해하고 접근했나.

“세출은 원래 선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어리고 철이 없었던 ‘해바라기’(2006)의 태식처럼 말이다. 쉽게 돈은 벌었지만 남에게 해코지 안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아온 홍길동 같은 친구다. 버스 기사를 구한 것도 공명심이 아닌, 평소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감독님이 그러더라. ‘이건 너무 동화 같은 이야기다. 때문에 나한테도 숙제지만 내가 이런 숙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래원씨도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원작은 그래서 일부러 보지 않았다. 어떤 틀이 생기게 되면 연기적으로 방해가 될 수 있어서다. 그냥 능청스럽게 했다. 장세출 캐릭터 자체가 영웅이고 멋진 남자여서, 특별히 멋있어야 한다고 의식하지 않고 연기했다.”

▶감독이 특별히 주문한 건 없었나.

“특별하게 주문한 건 없었다. 사실 감독님 성향이 ‘이건 이거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이럴 것 같지 않아?’라고 의사를 물어보는 쪽이다. 그 과정에서 배우가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게끔 만든다. 배고픈 사람에게 물고기를 잡아주는 대신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처럼 배우가 스스로 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그런 현장이 당신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서 아쉬웠다. 감독님의 자장 안에서 뭔가 자유로움을 발견했는데 익숙해질 만하니까 끝이 났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때문에 감독님 작품에 여전히 목말라 있는 상태다.”

▶대본이 당일 현장에서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들었다. 다음 촬영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배우입장에선 곤혹스러웠겠다.

“감독님이 현장에서 대사를 자주 바꾸시는 편이다. 엄청 긴 대사를 외우고 간 날도 여지없이 새 대본을 건네 받았다. 약간 수정한 게 아니라 대사는 물론이고, 장소와 등장인물까지 모두 바뀌었다.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몇번 그런 상황을 접하다보니 아예 대사를 안 외우게 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로 적응이 되더라.”(웃음)

▶국회의원에 출마하게 된 세출의 진심이 담긴 연설장면이 특히 좋았는데 이 대사도 그런 과정의 결과물인가.

“그렇다. 나 역시 세출의 진심과 간절함이 드러난 신이라 애정이 많은 장면이다. 감독님은 이 신의 핵심을 인지하지 못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첫 만남과 리딩때마다 ‘래원씨, 난 이 신만 생각하면 왜 그렇게 울컥하고 슬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솔직히 감독님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다. 시나리오를 읽어도 아무 느낌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찍으면서 차츰 감독님의 생각을 읽게 됐다. 세출이 건달로 지금껏 살아왔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시민을 구했고, 이제 목포를 위해 참회하는 심정으로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말한 그의 진심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부담감이 밀려왔다. 캐릭터에 좀 더 녹아든 후에 이 장면을 찍고 싶다고 감독님에게 말했다. 감독님이 흔쾌히 촬영을 한 달 뒤로 미뤄줬고 덕분에 좀 더 진심이 담길 수 있었다.”

▶전작 ‘해바라기’(2006)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였다면, 나름의 순정남인 세출은 남녀 모두가 좋아할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마저도 감독님이 생각한 틀 안에서 모든 게 이뤄졌다. 감독님은 ‘연출이 아버지면 배우는 어머니고 그 결과물은 자식’이라고 했다. 배우는 감독님의 의도대로 이야기에 잘 녹아들게 연기를 하면 된다. 말씀하신 것처럼 여자 관객들이 좋아한다면 그건 이 영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멜로 때문일 거다. 솔직히 감독님의 전작을 생각하면 멜로와는 그닥 매칭이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감독님이 여자 취향을 잘 아는 것 같지도 않고.(웃음) 그런데 느닷없이 노래방신에서 사랑노래를 부르라는 거다. 나는 평소 노래방도 가지 않는데 김동률의 ‘사랑한다는 말’까지 미리 선곡해 놓았다. ‘멋있고 좋잖아, 목포 건달이 이런 노래를 부르면 말이야’라고 하면서.”

▶사실적인 연기는 배우에게 있어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선 잘 승화된 것 같다.

“나 역시 이번 작품이 가장 만족스럽게 나온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전날 술을 많이 마신 세출이 황보윤(최무성) 선생 집에서 자고 일어나는 신이 제일 좋았다. 특별한 임팩트는 없지만 연기가 사실적이면서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자다가 일어난 모습과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촬영일정이 촉박한 와중에도 일부러 잠을 청해 자다가 방금 일어난 부스스한 머리와 부운 얼굴로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그런 디테일한 모습이 몇 군데 있어 전체적으로 느낌이 잘 살 수 있다. 사실 그것도 감독님이 의도한 거다. 감독님은 늘 ‘이 장면은 어떻게 찍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그런 방식으로 배우의 역량을 끌어낸다. 능숙한 조련사다.”

▶낚시 마니아로 화제가 되고 있는데.

“내가 평소 생각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연기할 때는 생각이 더 많아진다. 이번에도 장세출이 왜 이 장면에 나타나서 이런 말을 하고, 또 이런 행동을 할까 등을 나름 곰곰이 생각해봤다. 단순한 직진남 장세출은 절대 이런 생각을 하는 인물이 아닌데 말이다. 그때마다 ‘아! 내가 여기 잘못왔구나. 김래원이 아닌 극 중 장세출로 다시 돌아가야지’라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나와 상반된 성격의 세출이 부러웠다. 사실 일상에서만큼은 고민과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시작한 게 낚시다. 낚시할 때는 오로지 낚시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그렇게 취미가 된 낚시와 영화가 이젠 내 삶의 전부를 차지했다. 그래서 큰일이다. 장가도 가야하는데.”(웃음)

▶17세에 청소년 드라마 ‘나’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데뷔 22년을 맞았다.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

“내가 가장 보람을 느끼고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연기를 할 때인데, 내가 원하는 걸 계속하려면 더 집중해서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가 돼야 한다. 이만하면 잘하고 있는 거란 생각도 들지만 스스로에게 만족하기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때문에 하나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그때그때 자연스럽게 신을 만들어가는 강 감독님의 ‘열린 연출’ 방식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보조출연자 한명 한명까지 각자 상상의 나래를 펴고 연기할 수 있도록 열어놓는 스타일인데, 이제껏 접해보지 못했던 방식이라 강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좀 더 경험을 쌓고 싶다. 물론 다른 감독님과 작업을 할 때는 거기에 맞게 최선을 다하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악역은 정말 해보고 싶다. 사이코 패스인데 지금처럼 조곤조곤한 말투로 극한의 악을 보여주는 인물이라면 좋겠다. 어떤 느낌일지 정말 나도 궁금하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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