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의 패션디자이너 스토리] 아베 치토세(Abe Chit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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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4   |  발행일 2019-06-14 제40면   |  수정 2019-06-14
한 벌의 옷으로 여러 벌 겹쳐 입은 듯 ‘절충된 우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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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의 2017년 가을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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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가 2015년 선보인 봄 의상과 2017·2018년 가을의상 (왼쪽부터).
콘텐츠의 힘이 빛을 발하는 순간 사람들의 관심은 집중된다. 지난 5월 나이키와 사카이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발매된 하이브리드 컬렉션은 연일 포털사이트 상위 검색어에 오르며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해 그 인기를 실감케 하였다. 가슴을 뛰게 하는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는 사카이의 중심에는 디자이너 아베 치토세가 있다.

치토세는 1965년 1월 일본 나고야 북쪽에 위치한 기후현에서 태어났다. 나고야에 있는 학교로 통학하는데 매일 2~3시간이 걸릴 만큼 시골에서 자랐지만 재봉사인 어머니로 인해 일찍부터 인형 옷을 만들어 입히며 잡지와 TV로 접한 패션에 큰 관심을 보였다. 11세 때 우연히 TV 광고에 나온 이세이 미야케를 보고 자신도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를 결심한다. 학창시절 치토세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의 확고한 취향을 고수하며 학교에서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 세터로 이름을 알렸지만 치토세의 어머니는 딸의 독특한 스타일로 인해 함께 외출하기를 꺼렸다. 하지만 치토세는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나고야의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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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치토세.

패션계 잠재력 키우다 결혼·육아로 휴직
복귀 후 내놓은 니트, 유명 편집매장 매진
2008년 파리 패션위크 선보이며 큰 인기
나이키와 컬래버레이션 브랜드 파워 입증
익숙하고 친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시작
다양한 소재 레이어링 새로운 로맨틱 창조



졸업 후 22세의 치토세는 고베에 본사를 둔 도쿄의 대형 의류 회사에 취업하였으나 정체성 없는 브랜드에서 특별한 개성이 없는 다양한 옷을 만들기보다는 좀 더 창의적인 패션 만들기를 원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안정적인 대기업을 선호했지만 치토세는 회사 인근에 위치한 꼼데가르송을 자주 지나다니면서 그곳에서 일하기를 갈망하였다. 당시 꼼데가르송은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으로 패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었으며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녀의 염원이 통했는지 치토세는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꼼데가르송에서 패턴사로 일하기 시작한다.

레이 가와쿠보는 나이는 어리지만 치토세가 가진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녀를 채용했으며 당시 개인 레이블 론칭을 준비하던 전도유망한 준야 와타나베와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하였다. 치토세는 준야 와타나베에서 일하면서 동료 디자이너 아베 준이치를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져 1997년에 결혼하고 이듬해 딸을 출산하면서 치토세는 육아로 인해 준야 와타나베를 떠나게 된다. 8년 동안 유명 디자이너 레이블에서 자신이 좋아하던 창조적인 일을 했던 치토세는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패션에서 고립되어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지만 남편의 지지를 얻어 자신의 레이블인 사카이를 준비한다.

사카이(sacai)라는 브랜드 이름은 치토세가 결혼 전에 가졌던 성으로 원래 사카이(sakai)였지만 개인적인 삶과 정체성을 분리하자는 뜻으로 k를 c로 바꾸고 1999년 사카이로 첫발을 내디뎠다. 시작은 소박하게 진행되었다. 털실 열 뭉치를 가지고 만든 니트 5점이 사카이의 첫 결과물이었으며 이것을 가지고 사카이는 도쿄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니트웨어 브랜드로 출발을 시작했다. 독특한 니트웨어 5점은 일본의 유명 편집 매장인 빔스에서 모두 팔렸으며 이후 2002년에는 첫 직원을 고용하면서 치토세는 온전히 텍스타일 디자인에 집중하게 된다. 치토세는 사카이의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느린 속도로 천천히 조금씩 앞을 향해 나아가며 브랜드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론칭 1년차에 30명의 신규 고객을 확보했고 2년차에는 60명으로 늘어났으며 별도의 언론 홍보나 마케팅 없이도 바이어와 프레스들 사이에서 사카이라는 브랜드가 어느 정도 인지될 무렵 마침내 치토세는 2008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사카이를 선보이며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성공 가도를 위해 대부분의 브랜드가 택하는 기성복, 가방, 향수로의 확장을 택하지 않고 치토세는 브랜드가 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에 성공의 공식을 외면하고 외부 투자를 받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카이 컬렉션은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의 주요 도시를 비롯한 미국, 홍콩, 싱가포르, 중국, 서울 등 전 세계 100여개의 매장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매년 20~30%씩 꾸준히 매출이 신장하고 있다.

지난 5월 나이키와 진행한 협업에서도 사카이의 디자인력과 브랜드 파워가 고스란히 입증되었다. 한정판 운동화로 발매된 나이키 사카이의 하이브리드 컬렉션은 추첨을 통한 한정 판매로 진행되어 소수에게만 구매 기회가 주어지게 되면서 연일 포털사이트 상위 검색어에 오르며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 인기를 증명하였다.

사카이는 익숙하고 친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 치토세는 무엇보다도 남과 다른 독특함을 중요시하고 컬렉션에서도 매번 다른 반전의 미학을 선보이며 새로운 디자인을 추구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여러 소재를 사용하여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사카이가 가진 능력이다. 안감과 겉감이 다르고 앞모습과 옆모습, 심지어 뒷모습 모두가 달라 매우 복잡하게 보이지만 입었을 땐 꽤 단정한 모습으로 연출되는 치토세의 옷들은 보편적인 클래식이 아닌 사카이 클래식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키며 절충된 우아함을 만드는 새로운 로맨틱을 창조했다.

다양한 소재를 섞어 복잡하고 정교하게 레이어링하여 한 벌의 옷이 마치 여러 벌의 옷을 겹쳐 입은 것 같은 착시효과를 보여주거나 남성복 슈트 소재를 사용하지만 소재에서 느껴지는 남성미는 몽땅 걷어 내고 여성스러운 실루엣을 선보여 독특하고 혁신적이지만 베이직하고 클래식한 아이템에 적용하여도 결코 이상하게 보인다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자신이 동경하던 이세이 미야케, 레이 가와쿠보와 나란히 이름을 올리게 된 치토세, 천부적인 감각으로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흥미롭고 아름다운 마법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 (rh0405@krif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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