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의 마음 톡톡] 합창에서 배우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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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4   |  발행일 2019-06-14 제39면   |  수정 2019-06-14
인생도 합창하듯 노래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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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모교 대강당에서 열린 합창제. 모교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조화로운 삶의 지혜를 얻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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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뜬 마음에 일찍 일어나 보니 촉촉하게 땅이 젖어 있다. 오늘은 모교에 가는 날. 집을 나설 때는 비가 그쳐 있었다. 우리 일행은 예약 버스에 몸을 싣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비가 미세 먼지를 걷어가서 인지 올 5월 중 가장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차창 밖의 초목은 더 푸르고 싱그러웠다. 온 세상이 5월의 마지막 날을 축복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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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동창의 날에 참석한 합창제
싱그러운 교정 오가는 풋풋한 학생들
오월의 여왕 뽑는 메이데이 축제 추억

작은 음이 함께 어울려 이루는 하모니
상대 목소리 들으며 서로 감정 공유
전체 생각하는 배려심, 삶과도 비슷

일행은 대구에 사는 대학교 동창회 회원들이다. 모교 동창의 날 합창제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다. 해거리로 열리는데 마침 올해 합창제가 있다. 피아노가 있는 장소를 물색하고 음악을 전공한 후배가 지휘를 맡아 주었다. 다들 바쁜 틈틈이 시간을 내어 노래 연습을 했다. 이번에는 작곡가 이영수 선생님이 편곡한 ‘내 평생 사는 동안’을 선정해 부르기 쉽고 암기하기 쉬웠다.

바쁘다는 핑계로 늘 행사에 빠졌는데 이러다가 못 가겠다 싶어 이번에는 참가하기로 맘을 먹었다. 몇 번의 연습에 참여해 노래를 따라 부르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가슴으로 뭔가가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이게 기쁨인가 행복감인가 이런 느낌은 뭐지?’ 싶었다. 성가대를 하며 노래를 가까이 접하는 분들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여럿이 어울려 합창을 하니 혼자 노래하는 것보다 좋았다. 잠시 노래 연습을 하고 돌아오는데 가라앉았던 기분이 밝아졌다. 여러 사람들과 하모니를 이루어내는 데서 오는 뿌듯함이 있었다.

버스는 낮 12시 전에 교정에 도착했다. 총장 초대 오찬을 서둘러 먹고 교정을 둘러보았다. 교정에는 133주년 기념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교정은 많이도 변했다. 졸업한 지 40년이 되었으니, 길은 그대로인데 새 건물이 들어서 예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오르내리며 다녔던 길을 걸어보았다. 푸르른 초목으로 둘러싸인 교정은 여전히 아름답다. 오가는 풋풋한 학생들을 보며 감회에 젖어 본다. 교정 곳곳이 변하고 발전해 흐뭇하기도 하지만 쏜살같이 흐른 세월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학창시절에는 늘 지나다니면서도 이곳이 그렇게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미래가 암담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빨리 졸업하고 이곳을 벗어나야지 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런데 떠나보면 그때 그 시절의 소중함을 안다더니, 지금 아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예전에는 오월의 마지막 날 메이데이 축제가 있었다. 메이데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메이퀸 대관식과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쌍쌍파티였다. 당시 많은 남학생은 쌍쌍파티에 파트너로 초대받고 싶어했다. 메이퀸 선발은 각 과에서 대표를 선발해 본선을 거쳐 선정했다. 퀸은 성적이 우수하고 인품, 자세, 용모, 의사표현 능력을 고루 갖추어야 했다.

그러나 1976년부터 학생들이 축제 현장을 떠나 민주화 데모에 앞장섰으며 메이퀸 선발을 50%의 학생이 거부하고 나섰다. “오늘날 누가 누구의 여왕이냐” “시대착오적인 쇼”라는 반대 의견과 “여자대학이 갖는 매력”이라며 찬성하는 의견으로 갈라졌다. 결국 여론 조사에서 밀려나 1978년부터 대학의 상징 같았던 메이퀸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행사가 폐지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당시에 여성학 강의가 처음 개설되었는데, 그 강의가 메이퀸 선발을 폐지하는 데 일조를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동창의 날 기념식 1부 행사를 마치고 합창제가 시작되었다. 8팀이 출연하는데 대구지회 우리 팀의 발표순서가 첫째다. 검정 옷에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려해 인디언 핑크 코사지 하나씩 나눠 달았을 뿐인데 우리 팀의 분위기는 멋졌다. 간신히 무대 뒤에서 입을 한번 맞춰보고 무대에 올랐다. 연습 때보다 더 잘 부른 것 같았다. 은혜로운 성가를 불러 많은 박수를 받았다. 합창을 마치고 내려와 편한 마음으로 다른 팀들의 곡을 들어보니, 우리 팀의 곡과 의상은 너무 고전적이다. 대구의 보수적인 기질이 그대로 묻어난 듯했다. 다른 참가 팀들은 대학별로 합창단을 조직해 의상부터 시선을 끌었다. 거기에 율동까지 곁들이고 있었다. 어떤 팀은 반짝이 의상을 입고 ‘아모르파티’를 신나게 불러 관객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해 큰 박수를 받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유롭고 화려한 무대였다. 다행히 우리 대구 팀은 열심히 연습한 보람이 있어 1등상을 받았다.

행사가 끝나고 다 같이 일어나 교가제창을 했다. 간혹 애국가를 부를 때 뜨겁게 벅차오르던 감정이 교가를 부를 때도 느껴졌다. 얼마 만에 불러보는 교가인가. 나는 이번 합창제에 동행하기를 잘했구나 싶었다. 내가 합창제가 아니라면 어떻게 모교 대강당 무대에 서보겠는가. 모교에 대한 긍지를 느끼고 또 다른 감동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나만이 아니고 같이 동행한 우리 팀 모두가 즐겁고 소중한 경험이었다며,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오늘 날씨에도 감사했다. 대구에서 합창제를 위해 하나하나 준비한 임원들도 고맙다. 그들에게는 사랑과 지혜와 봉사의 정신이, 그리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스며 있다.

소리 중의 최고의 소리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 했다. 합창은 천부적인 사람의 목소리를 이용하기에 누구나 할 수 있다. 합창의 묘미는 화음(和音)이다. 몇몇 사람이 노래를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한사람이 음을 강하게 내거나 음이 삐져나오면 금방 드러나게 마련이다. 합창은 상대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기에 전체를 생각하는 배려심도 키워주고, 노래할 땐 다른 잡념이 들지 않아 좋다. 작은 음이 모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듯이 합창이 인생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걸 배우는 하루였다.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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