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소설 공소장과 수사권 조정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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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4   |  발행일 2019-06-14 제23면   |  수정 2019-06-14
[조정래 칼럼] 소설 공소장과 수사권 조정
논설실장

‘반역이라도 행한 듯 엄청난 담론으로 공소장을 시작하나, …법률 문서가 아닌 한편의 소설이다.’(양승태 전 대법원장), ‘검찰 수사기록을 보면서, …검찰로부터 겁박을 당한 행간을 보니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다.’(박병대 전 대법관), ‘이른바 트럭기소라는 신조어를 만들더니, 이제는 기록 복사도 덜 된 상태에서… 공판을 강행하려 한다.’(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법농단’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사법부 수장 등 전 사법부 수뇌급들이 수사와 재판의 문제점에 대해 이처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검찰의 공소장이 한마디로 ‘소설’이라는 거다. 세 사람 모두 서로 말을 맞추기나 한 듯 검찰의 조서를 짜맞추기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쯤에서 우리가 가장 궁금한 건 이들이 현직 법관이었을 당시에는 검찰의 이러한 수사 관행을 정녕 몰랐는가 하는 거다. 아마도, 틀림없이 그럴리는 없을 터. 직업적으로 일상에서 검찰의 공소장을 수없이 많이 접했을 사법부 베테랑들이 피고인의 자리에 서서야 비로소, 뒤늦게 깨달았다면 그건 무능의 소치이거나 공감 능력의 부재 탓이다.

사법부 수장급들이 법의 심판대에 올려진 경위와 속사정은 어찌됐든 장삼이사로서는 그들의 육성에 의해 적나라하게 증언된 수사·재판의 속살을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기성의 사실(Fact)을 관통하는 진실(Truth)을 대면하며 일말의 위안과 희열을 경험하게 된다. 이를테면 그 악명 높은 ‘먼지떨이’ 등 검찰의 수사 관행과 물샐틈 없는 법조의 천라지망도 확연하게 개혁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사법 개혁의 당위성이 대중성을 일거에 획득한다는 말이다.

검찰의 반인권적 수사 관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법부 수뇌들의 체험은 뒤늦은 깨달음에 불과하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지만 깨달음은 아무리 늦어도 늦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타산지석과 반면교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검찰의 강압 수사는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검찰에 불려 가본 사람들은 이구동성 입을 모은다. 이러한 후진적 수사·재판의 부조리에 속절없이 당하고도 하소연 한마디 못 한 채 안으로 화를 삭이기만 했던 민초들의 피울음을 법조 수뇌들이 대신 대변하고 위무하고 나섰으니 아이러니하지만 그나마 다행스럽다.

검찰은 ‘트집잡기’ ‘재판 지연’ 등으로 강압·과잉 짜맞추기 수사란 비판의 소리를 일축하지만 공허하기만 하다. 지금까지 검찰권의 남용은 무소불위를 자랑해 왔고, 특히 그것은 대통령의 ‘하명수사’에 이르면 절정에 달하곤 했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적폐수사로 명명된 하명수사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대체로 용두사미로 끝났거나 그 전철을 밟고 있는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진실을 규명하라’고 지시했던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이 그러하다. 사실 규명이 안되니 별건(別件)수사가 전가의 보도로 악용되는 악습은 악순환을 거듭한다. 검찰이 정권의 시녀나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덮어써 온, 스스로도 부정하지 못할 흑역사는 시나브로 아직도 여전히 적폐를 더해만 간다.

이쯤에서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문제가 절체절명 과제로 떠오르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다. 재판거래, 사법농단, 판사 탄핵 등 법원의 불법과 일탈 역시 단죄되고 질정(叱正)돼야 마땅하지만 이 또한 법 이외의 정치권력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기정사실로 규정된다면 권위·독재시대 사법부 장악과 다르지 않다. 사법농단을 바로잡기 위해 신(新)사법 농단이 자행되고 있다는 재야 법조인들의 성명은 이를 방증하고도 남는다. 수사 하명은 명백한 삼권분립의 위배다.

사법부의 정치권력 예속과 자기 권력화는 국민 기본권의 침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가장 그악한, 청산해야 할 적폐 중의 적폐다. 청산의 칼날이 사법부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 먼저 돌려져야 하는 게 정한 이치 아닌가. 수사권 조정은 시민의 기본권을 효율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사법부 수뇌들이 피고인의 자리에 서서 ‘공소장 소설’을 체감한 것은 시민적 호재다. 다시는 ‘소설 공소장’으로 애먼 사람들을 불러다 혼을 내는 소설가가 되지 말라고 요구할 절호의 기회. 논설실장

조정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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