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먹구름 위에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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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3 07:57  |  수정 2019-06-13 07:57  |  발행일 2019-06-13 제22면
[문화산책] 먹구름 위에 태양

얼마 전 계명대 창립 120주년 기념으로 준비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계명대 재학생·졸업생·교수님들이 함께 참여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고, 베르디 작품 중에서도 스케일이 크고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오페라이기에 더욱 기대가 되었다. 특히 3막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앙코르를 받아 한 번 더 부르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더했다. 물론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오페라 제작에 참여한 모두의 노력과 열정이 정말 빛났다.

30편이 넘는 오페라를 작곡한 베르디는 19 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오페라 역사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곡가다. 하지만 그에게도 절망과 시련의 시기가 있었다. 20대의 젊은 작곡가 베르디는 어린 딸과 아들 그리고 아내가 잇따라 죽는 비극적인 아픔을 겪게 된다. 게다가 그가 발표한 작품마저 흥행에 실패하면서 더이상 살아갈 이유도 음악을 해야 할 이유도 사라져버렸다.

그런 그에게 도움을 내민 손길이 있었다. 라 스칼라 극장의 극장장 메렐리였다. 그가 베르디를 찾아가 ‘나부코’의 대본을 손에 쥐여주며 작곡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설득했다. 당대 최고의 오페라 극장장이 직접 찾아가 실의에 빠진 젊은 작곡가에게 다시 오페라를 쓸 수 있도록 조력하였고, 그의 신뢰에 힘입어 베르디는 오페라 ‘나부코’를 작곡했던 것이다. 베르디의 가능성을 보고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메렐리의 선택이 실의에 빠진 베르디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베르디는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후 베르디는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아이다’ 등 최고의 걸작을 남기게 되었다.

갓 귀국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던 시절, 나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고마운 분이 있다. 어느 날 지인을 따라 그분의 사무실에 들렀는데 잠깐 티타임을 가진 자리에서 나에게 목관 5중주를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그 때 그 말 한마디는 의지할 데 없이 외롭고 답답한 나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힘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는 좋은 인재들이 많지만 그들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적은 것이 현실이다. 때로는 고통과 시련의 아픔을 겪을 때도 있지만, 희망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내밀어주는 도움의 손길은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을 것이다. 나의 말 한마디와 작은 손길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 어려운 이들에게는 절실할지도 모른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절망이 희망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는 해피엔딩을 경험하길 바란다. 먹구름 위에 밝은 태양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정혜진 (클라리네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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