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대통령의 메시지를 도무지 못 읽겠다”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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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0   |  발행일 2019-06-10 제30면   |  수정 2019-06-10
‘빨갱이’ ‘독재자후예’이어
현충일 추념사 내용을 보면
통합외치면서 이념논쟁 유발
정치공학적으론 해석되지만
상식적으론 해독하기 어려워
[송국건정치칼럼] “대통령의 메시지를 도무지 못 읽겠다”

대통령이 국가 공식기념식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내 생각을 알려 지지자를 끌어모으는 ‘정치’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내 말 한마디가 곧 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알리는 ‘국정운영’을 하는 자리인 까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혼동하는 게 아닌가 싶다. 현충일 추념사에서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진 건지 필자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추념사를 몇 번씩 읽어도 마찬가지다. “저는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한다.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그리곤 그 사례로 ‘김원봉’을 들었다. 전후맥락을 읽고 종합하면 “김원봉이 좌우합작의 상징이며 국군의 뿌리이고 한미동맹의 토대를 닦는 데 큰 공을 세웠다”로 정리할 수 있다.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북한 정권에서 두 번의 장관을 지내고 6·25전쟁 때 김일성에게 훈장받은 인물이 좌우합작의 상징, 국군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라니?

앞서 두 번의 국가 공식기념식에서 나온 문 대통령의 메시지도 필자는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3·1절 기념사의 ‘빨갱이는 일제 잔재’ 발언, 5·18 기념사의 ‘독재자 후예’ 발언이다. 김원봉 띄우기와 함께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어떤 메시지를 국민에게 주려는 건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메시지’는 그냥 귀로 들리는 말이 아니고 어떤 사실을 알리거나 주장하거나 경고하기 위한 함의가 담겨 있는 말이다. 지금 쏟아지는 문 대통령의 말이 아무리 좋은 취지를 갖고 있다고 해도 죄다 진보좌파 편향적 메시지다. 진보의 지지로 정권을 창출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엔 지지하지 않은 국민의 대통령도 돼야 한다. 문 대통령도 취임 초 그렇게 말했다. 보수의 눈엔 ‘진보의 대통령’처럼 비치니 국민을 갈라치기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말로는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 없다고 하면서도 실제론 더 극단적으로 나눈다.

대통령의 ‘빨갱이’ ‘독재자 후예’ ‘김원봉 공적’ 발언이 결과적으론 국민 편가르기를 하고 정치권에서 보수와 진보의 이념논쟁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몰랐을 리 없다. 그렇다면 뭔가 의도가 있는 메시지일 텐데 그걸 모르겠다. 그냥 정치공학적으로 생각하면 간단하다. ‘내년 총선이 다가오자 지지층 결집 필요성이 생겼다. 가장 효과적인 건 선거구도를 적폐세력 대 개혁촛불세력의 재대결로 가는 거다. 그러자면 지지층을 다시 불러모아야 하는데 2년 동안 국정운영 성적표로는 어림없다. 따라서 이념에 불을 질러야 하지만 ‘보수-진보’라고 할 수 없으니, 현대사를 통해 적폐세력과 차별화하자. 그게 진보의 장기집권에도 유효한 전략이 된다’. 주로 한국당에서 나오는 분석이긴 하지만 마냥 무시할 수도 없다. 문 대통령이 부쩍 국무회의나 청와대 내부회의에서, 또 외부인사와의 간담회에서 ‘적폐’ 얘기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공학적 번역기를 가동하지 않으면 대통령의 메시지가 뭘 담았는지 도무지 읽히지 않는다. 청와대 설명은 “현충일 추념사의 핵심 메시지는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는 것이고, 정파와 이념을 뛰어넘어서 통합으로 가자는 취지”란다. 도대체 대통령의 말 어디에서 ‘정파와 이념 초월’이란 메시지를 찾았을까. 70여년 전 김원봉의 부대가 임시정부 광복군에 편입된 걸 그렇게 해석한다면 침소봉대로, 역사 왜곡에 가깝다. 김원봉의 의지로 광복군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고증이 더 많다. 청와대를 오래 출입하면서 대통령들의 말을 셀 수 없을 정도로 접하고 해석해 온 필자가 문 대통령 말에 담긴 메시지는 읽지 못하겠다. 국민은 어떨까.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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