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천천히 끈기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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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0 07:54  |  수정 2019-06-10 07:54  |  발행일 2019-06-10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천천히 끈기 있게

“6월 모의평가 이후 아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시험이 생각보다 어려웠는지 많이 틀린 것 같습니다. 아이를 무엇보다도 힘들게 하는 것은 입시 기관들의 서로 다른 분석 결과와 그에 따른 학습전략입니다. 시험 결과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며 우직하게 공부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란 격려의 말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아이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조급함을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도와줘야 합니까?” 고3 수험생 엄마의 말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배리 글래스너는 그가 쓴 ‘공포의 문화’에서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공포가 실제로는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분석했다. 그는 ‘공포와 불안’을 조장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려는 ‘공포 행상인’들이 즐겨 쓰는 수법을 폭로하며, 공포와 불안을 확대하여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사기꾼들을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이들은 작은 위험을 크게 보이게 하고 통계 수치를 비틀어 진실을 왜곡하며,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례를 일반적인 것으로 과장한다. 우리는 과장된 공포와 불안이 우리 자신을 파괴하기 전에 그런 공포를 차분히 분석하고 검토하며 의심해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학생과 학부모를 불안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검증되지 않은 학습 전략이나 불안을 부추기는 조언으로부터 초연해질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태생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먼이 연주자로서 성공하게 된 이유를 간단하게 요약해 달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연습’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서 연습의 양만으로는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없다고 했다. 연습은 양과 질이 조화를 이룰 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자를 지키며 천천히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이올린이든 피아노든 아무리 연습해도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학생들 대부분은 지나치게 빠른 박자로 연습하는 경향이 있다. 복잡하고 복합적인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뇌는 확실하고 정교한 입력을 요구한다. 100m 달리기를 하듯이 빠른 속도로 연습하면 뇌는 복잡한 정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고 나중에 그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가 없다. 느린 박자로 또박또박, 나무에 글자를 새겨 넣듯이 정확하고 정교하게 뇌에 각인해야 어떤 상황에서도 그 내용을 쉽게 떠올리면서 창의적으로 활용하고 응용할 수 있다. 악기, 운동, 학습 등 모든 분야에서 실력을 키우기 위한 근본 원리는 같다. 시작 단계에서 기본기를 천천히 익히며 확실하게 다지지 않으면, 어렵고 복잡한 단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 수준에는 이를 수가 없다.

평가원 모의고사도 연습으로 치는 시험이다. 최종적인 성적은 지금부터의 공부에 좌우된다. 자신의 취약점을 보충하면서 기본개념의 이해와 내용 정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수험생들은 가장 느린 방법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여름을 이기는 자가 최후에 웃음 짓는다’라는 입시 격언을 명심해야 한다.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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