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안보가 안 보이는 아시아안보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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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03   |  발행일 2019-06-03 제30면   |  수정 2019-06-03
韓美, 敵인식 다른시각 확인
中美는 복수혈전 거친 공방
회의서 북핵은 관심밖 밀려
中美의 고래싸움에 낀 우리
한쪽을 선택하기도 어려움
[아침을 열며] 안보가 안 보이는 아시아안보회의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17차 아시아안보회의가 종결되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주관하에 매년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안보회의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아세안 및 유럽 주요국 국방장관과 안보전문가, 합참의장 등이 참석한다. 올해 한국에서는 정경두 국방장관이 참석해 ‘한반도 안보와 다음단계’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정 장관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빈틈없는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고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아시아안보회의 참여국과 청중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북한의 핵문제나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처음부터 논외고 쟁점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개되는 ‘복수혈전’이었다. 미중 양국은 회의전야제를 치르기도 전에 선전포고를 방불케 하는 험악한 수사들을 주고받더니 회의 진행 직후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이 “어떤 국가도 이 지역을 지배해서는 안된다”며 중국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은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동을 그만 두어야 한다”며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거점화를 견제하겠다는 의지도 천명했다. ‘중국의 팽창’을 주적으로 설정하고 정면 대응 방침을 밝힌 셈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큰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향후 경제제재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북한도 중국과 한 편인 ‘적’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이다. 정경두 국방장관과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의 언급을 보면 한미동맹체제의 파트너인 한국과 미국의 ‘적 인식’이 전혀 다르다. 위협대상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은 ‘적 설정’이 다르다는 것이고, ‘적’이 다르면 군사동맹은 의미가 없다. 실천계획도 다르다. 한국은 남북한 관계개선을 통해 위험요소를 제거하려는 데 반해 미국은 지속적인 압박을 통해 북한의 핵무장을 해제하려고 한다. 미일동맹의 한 축인 일본은 미국의 인식과 실천계획을 지지한다.

한국과 미일의 인식과 향후계획이 다르면 다음 단계는 어떻게 진행될까? 국제정치는 철저한 현실주의 원리에 근거한다는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보면 자국의 이익과 힘의 논리가 우선시된다. 결국 미일 동맹체제가 작동하여 아시아안보게임을 주도하게 될 것이고, 동맹궤도에서 이탈한 한국을 무시하고 한반도문제에 직접 개입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다. 최근 미군이 사드포대 배치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미군헬기로 직접 컨테이너 등 장비를 공수하고 있는 등 실행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섀너핸 미 국방장관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일본, 한국, 대만, 아세안과 제휴할 뜻을 강하게 표출하였고 실제 한국정부는 인도-태평양전략에 참여하라고 미국의 주문을 받은 상황이다. 결국 한국은 인도-태평양전략에 공조하기 위해 F35A를 구매하고, 사드포대를 배치하고, 연합해상훈련에 참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미중간의 전쟁이 안보문제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경제전쟁과 기술전쟁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고 중국도 강력하게 맞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관세폭탄, 화웨이 공격에 맞서 중국도 전면전을 선포했다. 중국의 해상전력을 남중국해에 배치하여 맞대응하고 있으며, 전략무기제조의 핵심원료인 희토류 보복도 준비하고 있다.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다(勿謂言之不預也)’고 최후통첩을 날린 중국은 미국에 중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정면 대응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의 적극적인 일대일로 참여를 촉구하고 있으며 사드배치를 거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인가, 중국인가’ 선택권도 없는데 선택해야 하는 대한민국이 안타깝다. 사분오열된 국내 상황은 차치하고라도 지금 당면하고 있는 중미전쟁의 덫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가? 고래싸움에 끼인 새우가 살 길은 전장을 벗어나는 길이 유일한데, 그나마도 마음대로 못하는 현실이다.

이정태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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