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 최소영
  • |
  • 입력 2019-06-03 08:00  |  수정 2019-06-03 08:00  |  발행일 2019-06-03 제18면
“혹시 제자와 만날 수 있을까” 가슴 뛰는 교사의 마음
20190603
일러스트=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교사들은 제자들 보면서 보람 느껴
스승의 말 귀기울여 준 아이들 덕분
선생으로서의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선배 교사들도 또다른 훌륭한 스승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마다 새해가 시작되는 기준은 조금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는 1월1일이, 또 다른 이에겐 음력 설 명절이 새해의 시작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사에게 새해의 시작은 3월2일 입학식부터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만큼 새 학기가 시작된다는 것은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3월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우리는 매년 2월이면 마음 아픈 이별을 경험해야 한다. 3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아이들을 상급학교로 떠나보내야 하고, 4년을 함께 생활한 동료를 다른 학교로 떠나보내야 한다. 어떤 이별도 아쉽지 않은 이별이 있을까마는 학교에서 맞이하는 이별 중에 가장 마음 쓰이는 이별은 따로 있다. 바로 정년퇴직을 맞이하는 선생님들과의 이별이다. 40년 이상을 교직에 계시던 분들이 2월28일을 마지막으로 인생의 전부였다고 말할 수도 있는 학교를 떠나게 된다. 과연 이 분들이 맞이할 3월1일과 2일은 어떤 느낌일까. 감히 예상하기도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교직 사회에서는 쉽사리 표현할 길이 없어 이렇게 표현한다. “시원섭섭하시죠?”

올해 2월에도 퇴직을 며칠 앞둔 선배님을 모시고 김광석거리의 어느 작은 식당에 모여앉아 우리는 이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원섭섭하시죠?” “섭섭시원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아.”

우리의 ‘시원섭섭’을 ‘섭섭시원’으로 정정하신 선배님의 어조는 정갈하고도 진실했다. 정년퇴직이라는 이별을 앞두고 이미 퇴직을 하신 대 선배님과 현직 교장, 교감, 90년대 초반 학번과 막내 97학번까지 성별도, 연령도 다른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이 인연의 공통점이라면 10년 넘게 서로 알고 지냈다는 것, 그리고 서로를 무척 아끼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것,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국어선생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가면서 이별의 아쉬움으로 조금씩 무거워지는 공기를 의식하셨을까. 이미 퇴직하신 대선배님이 화제를 바꾸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오래 전 십수 년을 함께 한 차를 몰고 복현오거리를 통과해 가고 있는데, 경찰이 차를 세우더라는 것이다. 신호위반도 아니고 과속도 아닌데 왜 경찰이 잡을까. 슬슬 짜증이 밀려오던 그때 운전석 가까이로 다가온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려 차창을 내리는 순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선생님, 아직 차 안 바꾸셨네요. 저 ○○고 ○○○입니다.” 나는 그 수많은 차 중에서 용케 스승의 차를 알아본 제자의 눈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선배님의 말씀이었다. 그날 이후로 선배님은 경찰이 차를 세우면 가슴이 뛴다는 것이다. 혹여나 예전 그날처럼 스승의 차를 기억하고 인사하고 싶어 차를 세우는 어느 제자를 발견할 수 있지는 않을까 싶어 그렇다는 말씀이 마음을 울렸다. 그러자 여기저기 제자들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또 한 선배님은 최근에 특수학교 교사로 발령받은 제자가 전화를 해서 감사 인사를 했는데 너무도 미안하더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무 반듯하고 바르기만 해서 또래 친구들이 속 답답한 친구라고 말하던 학생이었는데, 솔직히 담임 입장에서도 융통성이 부족한 것 같아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담임이니 늘 격려하고 위로했는데, 그 학생이 특수학교 선생님이 된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너무 반듯해서 융통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점 때문에 특수학교 교사가 될 수 있었고, 또 특수학교 교사에게는 이런 것들이 모두 장점이 됨을 왜 진작 알아봐 주지 못했을까 미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특수학교 교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의 격려 때문이었다고 전화한 제자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반성이 되더라는 얘기였다.

하나둘 이어지는 제자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느새 우리는 퇴직하시는 선배님을 향한 우리의 아쉬움을 또 다른 설렘과 희망으로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 교사들은 나를 기억해주고 감사를 표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내가 무엇을 해 주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늘 그렇듯 담임으로서 교과담당으로서 학생들에게 성실하기는 했지만 뭔가 특별한 것을 해 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우리가 특별한 선생님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왜일까.

이 비밀을 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우리 교사들이 더 훌륭해서라기보다는 스승의 말을 귀담아듣고 좋았던 것들만 기억해 준 제자들 덕분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또 한 가지 일상의 삶에 파묻혀 후배들이 선생으로 사는 보람과 즐거움을 잊지 않도록 곁에서 끊임없이 되새겨 주는 교사 선배님들이 계시기에 흘려보낸 기억들 속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누며 평생을 스승으로 살아오신 선배님을 보내드리는 그 순간,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다. 스스로는 모르셨겠지만, 후배들에게 따뜻하셨고 무엇보다 뒤따를 사람들을 생각해 발걸음 하나도 신중히 하셨던 선배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를 가르친 또 한 분의 훌륭한 스승이셨기 때문이다. 오늘은 선배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그 목소리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나혜정<경북대 사범대학 부설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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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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