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학교, 슈필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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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번 학기에는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 수업으로 심리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일상이 주는 행복’이라는 주제로 긍정심리학 부분을 다루었는데요. 학교별로 중간고사가 끝나고 이제 수행평가 시즌이 무섭게 다가오고 있어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다 싶더군요.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 우리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은 여러 심리학 실험을 통해 증명되고 있습니다. 한 심리학 실험에서 135명의 학생에게 ‘최근에 나누었던 일상적인 대화의 기록’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친목 행사’ ‘본인이 쓴 글의 일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세 곡’과 같이 평범한 기록들을 타임캡슐에 담아 묻게 했습니다.

기록을 묻으면서 3개월 후에 타임캡슐을 열 때 그들의 기분이 어떨지 예측하게 했습니다. 타임캡슐을 개봉한 학생들에게 그 기분이 어떤지와 타임캡슐 속의 기록이 얼마나 소중한지 등을 다시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3개월 전에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큰 행복함과 만족감을 느꼈고, 타임캡슐에 들어있던 것들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즐겨 듣던 음악이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나올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낍니다. 값비싼 선물을 주고받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한 일상을 과소평가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삶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 경험의 앙상블이다. 공간이 문화이고, 공간이 기억이며 아이덴티티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그의 책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는 공간 ‘슈필라움’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는 교수라는 안정된 직위를 박차고 일본에서 4년 동안 그림 공부를 한 뒤 여수 바닷가에 그만의 작업실, 슈필라움을 마련합니다.

독일어에만 있는 단어인 슈필라움(Spielraum)은 ‘놀이(Spiel)’와 ‘공간(Raum)’의 합성어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주체적 공간’을 뜻합니다. 물리적 공간과 함께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말이지요. 자기만의 슈필라움이 있어야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매력을 만들고 품격을 지키며 제한된 삶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로 밀집된 장소에서도 본능적으로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려 하고, ‘내 공간’을 어떻게든 마련하여 정성껏 가꾸며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아무리 드넓은 공간을 물리적으로 소유해도 그곳이 슈필라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값비싼 과시용 가구들로 그 공간을 가득 채운다고 해도 슈필라움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한 개인의 주체성이 취향과 관심으로 구체화돼야 비로소 진정한 슈필라움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에서라면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정말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즐겁고 행복할 수 있겠지요.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겨워하지 않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을 것입니다.

나만의 슈필라움에서는 타인의 시선이 함부로 나에게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나를 관찰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내 시선으로 관찰하는 일이 가능해져야 삶과 사회를 주체적으로 조망하고 행복의 지평을 자율적으로 개척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고려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그들을 이해하고 싶을 때 전제돼야 할 요소일 뿐입니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단순한 방법들이라도 우리 일상에 스며든다면 전보다 더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야말로 슈필라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저 시간을 견디며 버티지 않고 그 속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고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야겠습니다.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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