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 칼럼 활용한 ‘글쓰기’로 주목받는 대구 비슬고

  • 이효설
  • |
  • 입력 2019-06-03 07:43  |  수정 2019-06-03 07:43  |  발행일 2019-06-03 제15면
사회 이슈 골라 치열한 토론…논리적 사고력 ‘쑥쑥’
■ 신문 칼럼 활용한 ‘글쓰기’로 주목받는 대구 비슬고
비슬고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신문을 읽고 있다.

대구 비슬고가 신문 칼럼을 활용한 글쓰기 교육으로 주목받고 있다. 수업 시간에 칼럼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직접 글로 쓰는 과정이 정착돼 일회성이 아닌 지속가능한 교육 프로그램이란 호평을 받는다. 학생들은 글쓰기 훈련을 하며, 직접 책을 펴내는 활동까지 겸해 학생부 기재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 신문 칼럼 활용한 ‘글쓰기’로 주목받는 대구 비슬고
한 학생이 신문 기사를 읽고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 신문 칼럼 활용한 ‘글쓰기’로 주목받는 대구 비슬고
학생들이 펴낸 책‘고딩들, 세상을 향해 외치다’ ‘대한민국은 지금’의 표지.



3년째 ‘칼럼 100℃’ 프로그램 운영
20주간 40건 읽고 400자 이상 훈련
전문지식 쌓으며 의견 당당히 개진
토론 거치며 글쓰기 공포도 사라져
학생들이 쓴 글 모아 책 발간 ‘결실’
글쓰기 넘어 지역사회 탐구로 확대

◆신문칼럼 40편 읽고 400자 이상 글쓰기 훈련

비슬고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신문을 펼친다. 2017년부터 국어·논술 시간에 일간 신문을 펼쳐 자신이 읽고 싶은 기사를 골라 읽고 내용을 요약한다.

특히 칼럼을 잘 활용한다. 비슬고는 ‘칼럼 100℃’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칼럼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 토론한다. 학생들은 주 2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신문 칼럼을 밑줄 그으며 읽는다. 네이버밴드에 칼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면 다른 학생들이 댓글을 단다. 자연스럽게 사이버 토론의 장이 마련된다.

신문 칼럼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어떤 이슈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 대안과 전망 등을 제시하는 훌륭한 학습자료가 된다.

학생들은 형식적으로 읽고 쓰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들은 20주 동안 40개의 칼럼을 읽고, 2가지 이상 근거를 들어 자신의 생각을 400자 이상 글로 써야 한다. 또 다른 친구가 쓴 댓글에 반드시 1개 이상 댓글을 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는 같은 주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확인하는 과정이다.

칼럼의 주제도 다양하다. 욜로 시대, 창의력, 일자리문제, 언론의 윤리, AI, 소수자들의 권리, 품위 있는 죽음 등. 대부분의 주제들은 이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것들이다.

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국어 독해력만 습득하는 게 아니다. 문웅렬 국어 교사는 “입시에 매몰된 학생들이 이 시간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을 습득하며, 논리적 사고력과 비판적 이해력 및 글쓰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3학년 강유진 학생은 “처음 칼럼을 읽을 때 이해가 어려웠지만, 한 줄 한 줄 밑줄을 그어가며 읽으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지식과 정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다. 다양한 사회적 이슈·문제에 대해 내 생각이 생겨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의 과정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도 나왔다. 학생들이 ‘고딩들, 세상을 향해 외치다’라는 책을 제작한 것. 학교마다 일기·수필 형식의 책들은 다수 출간돼 있지만 사회적 이슈에 대해 당당히 의견을 밝혀낸 책은 이례적이다.

■ 신문 칼럼 활용한 ‘글쓰기’로 주목받는 대구 비슬고
비슬고 학생들이 문웅렬 국어교사와 함께 자신들이 직접 쓴 책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대구 비슬고 제공>


◆관심있는 주제 골라 쓰고,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학생들이 처음부터 칼럼 읽기와 글쓰기에 익숙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1학년 학생들은 글을 쓰고 이를 발표하는 것에 두려움이 컸다. 논술 첫 시간에 ‘내 글을 다른 사람이 보는 게 부끄럽다’라든가 ‘무엇에 대해 써야할지 전혀 모르겠다’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일이 잦았다.

이진주 국어 교사는 묘안을 짜냈다. 학생들을 ‘글쓰기 공포’에서 구제하기 위해 도움을 주기로 한 것. 이 교사는 ‘관심 있는 주제로 글을 쓰도록 해보자’는 데 착안했다. 그리고 신문 기사를 학생들이 직접 고르기 위한 투표를 실시했다. 이렇게 선정된 주제는 입시제도, 채용비리, 미세먼지, 최저임금 등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학생들은 직접 선택한 기사를 평소보다 꼼꼼히 읽었다. 중심 내용을 요약하고,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 근거와 함께 밝혔다. 이 과정에서 같은 주제를 고른 학생들끼리 자연스레 모였다. 기사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도 했다. 그런 다음,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글을 썼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다. 친구들끼리 글을 돌려보며 미흡한 부분을 보완했고 교사가 첨삭을 맡았다. 이렇게 완성된 글을 묶어 ‘대한민국은 지금’이란 책도 펴냈다. 이 책을 읽어본 이들은 “10대 청소년들이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기대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는 평을 했다.

2학년 정채원 학생은 “우리나라의 입시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친구들과 자료를 수집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나름 해결책에 대해 정리할 수 있었다. 특히 내 글을 다른 친구, 선생님에게 보여주며 수정한 결과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사라졌다”고 소감을 전했다.

◆학생들이 지역 소개 책자 직접 만들며 사회와 소통도

비슬고의 글쓰기 수업은 지역사회 탐구로도 확대 중이다. 글쓰기 PBL 수업을 통해 지역사회를 탐구하고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 중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달성군청 홍보 담당 공무원으로 발령받아 현풍 지역 소개 책자 제작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가상의 상황을 줬다. 그리고 4명씩 모둠을 이루어 소개할 기관·장소·맛집 등을 하나 정하라고 한 후 모둠별로 역할을 분담해 관련 자료를 조사·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조사한 대상을 찾아가서 취재하도록 했다. 그 결과 ‘현풍 탐구생활’이란 책이 나왔다. 이 책에는 국립대구과학관, 비슬산, DGIST, 현풍도깨비시장, 현풍할매곰탕 등 현풍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에 대한 학생들의 재미나고 현장감 있는 안내가 담겨 있다.

문 교사는 “학교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해 탐구하고 이해하는 활동은 그 지역의 미래와 직결돼 있다. 미약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줄 것”이라며 수업의 의미를 밝혔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이효설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