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인기와 환각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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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9   |  발행일 2019-05-29 제30면   |  수정 2019-05-29
꿈과 일상에 완전 좌절한
청년백수들의 절망의식
지금 우리 향해 선전포고
도피적 환상 안아줘야
청년 절망도 공존 가능
20190529
이춘호 주말섹션부 차장

미장원에 갈 때마다 난 보그, 엘르 등 프리미엄급 패션잡지 속 슈퍼모델의 표정을 여러 각도로 분석하는 걸 좋아한다. 다들 슈퍼모델의 몸매에 탄성을 지르지만 실은 눈매가 더 핵심이다. 그녀에게 몸매는 ‘덤’. 혈(穴)은 눈동자에 숨어 있다.

남아공과 러시아의 세계적 모델인 캔디스 스와네포엘과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이 두 모델의 눈이 뿜어내는 몽환, 냉혹, 우수, 비극…. 깊고 강렬하고 아득하다. 특히 그레이·블루·옐로 계열의 이국적 심도(深度)의 동공은 보는 이의 현실감을 마구 흔들어 버린다. 남성도 그런 동공을 장전하면 격조가 달라진다. 난 1962년 상영된 데이비드 린 감독의 명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주연 배우 피터 오툴(1932~2013)의 푸른 동공을 능가하는 남자의 눈빛을 본 적이 없다.

저들의 눈빛은 살기등등하다. 지상의 몫이 아니다. 지상과 우주의 경계인 지상 100㎞, 그 카르만선을 벗어나면서부터 펼쳐지는 심우주의 깊이가 장착돼 있다. 생각해 보라. 180㎝가 넘는 신장,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몸매와 신화와 같은 동공, 완벽한 치아…. 그런 이국적인 몸매의 슈퍼모델이 일상 앞에 나타난다면. 그건 하나의 ‘미학적 테러’이다.

슈퍼모델에겐 몇 가지 시크릿이 있다. 런어웨이에서 캣워킹을 마치며 터닝할 때 그 누구도 그 모두도 겨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조금은 관객을 무시하는 듯한 시선처리. 다시 말해 그들의 포즈는 절대 개인적이고 사적이지 않다. 오만·도도한 기운이 압도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얼굴보다 그녀가 입은 옷에 집중된다. 그들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패션을 강조하는 각도를 안다. 어쩜 그들의 매력이란 건 햇빛이 아니라 달빛의 몫인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여성들보다 그들이 유혹의 대상일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의외로 ‘유혹의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왜 그럴까. 그건 완벽한 미(美)가 일상이 아니라 초월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고 예술이 늘 ‘중독의 연장’에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슈퍼(Super)! 이건 일상을 소외시킨다. 그래서 실험실 증류수 같다. 그래서 슈퍼의 삶은 ‘탈일상’으로 몰린다. 그게 슈퍼의 비극이다. 그 삶이 중심을 잡으려면 자연 주지육림(酒池肉林)급 진정제가 동원되어야 한다. 그들의 내면은 극도로 과장될 수밖에 없다. 바깥 자기와 화해될 수도 없다. 밖은 황홀한데 정작 그 황홀을 들고 있는 원래 자기는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 자아는 늘 방치 상태. 그런 자아가 보기 싫어 늘 뭔가에 홀려 파티적 일상을 좀비처럼 순례한다. 그 동력은 뭔가. 바로 ‘인기’란 이름의 악령이다. 인기끼리는 공존불가. 인기는 인기를 소외시킨다. 그래서 인기와 인기 사이에는 늘 ‘음모’가 서식한다. 매력적 존재일수록 자아분열 강도는 일반인과 비할 데 없이 증강된다. 인기는 유명세로 이어지지만 자아는 늘 ‘무명’이다. 주인은 방치되고 집(유명세)만 커져나간다. 급기야 자아가 분열된다. 자아의 핵심부품인 고독과 외로움 때문이다.

인기가 치솟을수록 자아로의 길은 더 봉쇄된다. 부풀려진 자기가 진짜 자기를 가려버린다. 진짜 자기를 봉인시키기 위해 그들은 술과 마약, 사랑없는 섹스 등에 의존한다. 일상만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환각의 먹잇감이 되어간다. 인류사를 장식한 모든 인기의 말로는 다들 그런 전철을 밟았다. 27세, 마약이란 감옥에서 요절한 3J(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지미 핸드릭스)도 그랬다.

결혼을 저주하고 대신 반려견과 휴대폰을 품은, 직장보다는 여행을 선택한 청춘이 급증하고 있다. 일상보다는 환상의 길을 가고 있다. 도피적 환상, 그 대척점에는 일상에서 절망한 각종 사이코패스가 우리의 숨통을 겨누고 있다. 우리는 조만간 이 두 부류와의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 희망과 절망과의 전쟁이다. 이 전쟁 앞에선 이념·진영논쟁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모두 핵대결보다 더 무서운 이 전쟁에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이춘호 주말섹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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