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시선] #스쿨미투(#SchoolMeToo) #위드유

  • 뉴미디어부
  • |
  • 입력 2019-05-23   |  발행일 2019-05-23 제30면   |  수정 2019-05-23
10대 여성에 씌우는 프레임
학교 내의 성차별과 성폭력
묵살·은폐시킬 수 있는 도구
전통적인 성역할을 넘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야
[목요시선] #스쿨미투(#SchoolMeToo) #위드유

작년 여름 막내딸과 시내 빵집에 갔다가 10여년 만에 한 지인을 만났다. 막내딸을 소개하자 “어, 막내가 아들이었나요? 이상하다. 딸 아니었나요?” 한다. 그 말에 “네 맞아요. 딸이에요” 하니, 놀라며 “전 남자인 줄 알았어요. 머리가 너무 짧아서”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딸이 “이런 모습이 여자예요”라고 툭 던졌다. 그 지인은 무척 당황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여고생이었던 딸은 긴 머리카락을 짧게 커트를 하고서 매우 만족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던지는 많은 부정적인 말들에 (특히 친척들) 처음엔 의아해 하다가, 화를 내기도 하다가 이후 나름 어떻게 대답할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사회가 규정한 소위 ‘여자답다’는 ‘여성성’에 대한 고민은 여자로, 여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고 딸은 말했다. 그런 딸의 고민은 지금도 이어지지만 자신만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에 적극 응원했다.

‘여고생’이라는 단어에는 특정한 이미지와 의미가 붙어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여고생’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이미지들은 꽉 끼인 교복차림의 여고생 모습에 순진하고도 발랄한 이미지, 가슴과 엉덩이가 강조된 섹시한 모습들이다. 포르노 사이트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며 성적으로 대상화되지만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닌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또한 ‘여고생’은 스팸메일이나 남성용 만화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캐릭터다. 방송에서도 어린 여성들을 대거 출연시켜놓고 꿈을 위해서라며 체중계에 오르게 하고, 애교를 부리게 한다. 이것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청소년들의 실제 모습과는 상관없다. 그러나 사회는 학교는 가정에서는 이러한 비현실적인 ‘○여고생’ 이미지 프레임들이 실제 여고생들의 행동이나 성격을 규정짓는 데 판단기준이 된다. 다리를 벌리고 있거나,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말했을 때, 머리를 감지 않을 경우, 여고생 같지 않다고 일상에서 말하는 것이다.

국내 모든 차트에서 1위에 올랐던 여성 아이돌의 노래가사를 보면, ‘수동성’은 ‘여성적인 성격’이라고 이미지하고 있다. ‘여자가 쉽게 맘을 주면 안돼/ 그래야 니가 날 더 좋아하게 될걸/ 나도 니가 좋아 상처 입을까 봐/ 걱정되지만 여자니까 이해해주길…’. 조신함과 상냥함, 수동적 이미지의 ‘여성성’은 오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 강요된 것으로 필연적인 연관성이 없음은 이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생각해 보면 어린 여성, 10대 여성에게 자꾸 어떤 프레임을 씌우고 있는 모습은 필자의 청소년 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프레임은 학교에서 성차별, 성폭력은 묵살되거나 은폐될 수 있는 도구였다. 오랫동안 빨갱이, 반공 프레임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불리는 도구로 쓰였던 것처럼.

지난 한 해, SNS상에 가장 많이 리트윗된 사회분야 이슈는 #스쿨미투(#SchoolMeToo) 였다. 학내 성폭력에 대한 학생들의 용기 있는 고발이 한국 사회 전체를 흔들었다. 올해도 울려 퍼지는 #스쿨미투에 숨 죽여 우는 청소녀들에게 정부와 교육청, 학교와 부모들은 어떤 모습으로 들을 것인가. 또한 방관자의 모습으로 보여준 우리 부모들은 어떤 역할로 응답할 것인가.

“여기 있는 어린 여성들에게, 당신의 인생은 다를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있으니까. 우리가 당신의 뒤를 지켜줄 거니까.”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에 대한 배우들의 고발 이후, 리즈 위더스푼이 2017년 ‘우먼 인 할리우드(Women in Hollywood)’ 행사장에서 발언했다는 내용이다.

지켜준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많은 여성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신체에 대해 당당하고, 전통적인 성역할을 넘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또 그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로 들렸다. 그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받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승연 (소우주 작은도서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