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연극의 해’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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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2 07:59  |  수정 2019-05-22 07:59  |  발행일 2019-05-22 제23면
[문화산책] ‘연극의 해’ 단상

연극을 수식하는 말은 여럿 있다. ‘연극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느니, ‘연극은 곧 삶’이라는 표현처럼 말이다. 연극이 삶이 되고, 현실의 거울이 된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진 사건을 의미한다. 그 사건은 과거일 수도 현재일수도 미래일 수도 있고, 현실의 공간, 상상의 공간일 수도 있다. 변혁의 큰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 한국 연극의 사건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 블랙리스트, 미투 파동으로 한국연극 100년사에서 가장 질곡 같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 교육 현장이나 연극 현장이나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연극을 배우겠다는 입시생들은 줄지어 섰다. 대학만 합격하면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혀 연기를 배우다가 정작 졸업하면 현장과 담을 쌓는 전공자가 부지기수다. 배우겠다는 지망생은 많은데 하겠다는 전공자는 드문 한국연극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현실보다 연극 속에 살 때가 더 행복했다”는 어느 노배우의 고백처럼 연극의 현실은 회초리처럼 따갑고 눈물겹기 그지없다.

그런 연극이 내년 ‘연극의 해’를 맞아 회심의 재기를 노릴 태세다. 국립극단 창단 70주년을 맞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20년을 연극의 해로 지정하겠다는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열악한 한국연극을 부흥시키겠다는 의도처럼 보이지만 케케묵은 구조적 결함을 방치한 상태로는 일시적 이벤트에 그칠 우려도 크다. 돌이켜 보면 이어령 문화부장관 시절인 1991년 ‘연극·영화의 해’가 지정된 적이 있지만 ‘연극의 해’로 단독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장관은 “상처받고 갈라진 한국 연극이 서로 단합하고 다양한 연극행사를 열 수 있도록 하겠다” “대학로를 연극의 심장부로 활성화하기 위해 관련 부서와 협의를 계속하겠다” “소극장이 관객으로 꽉 찰 수 있도록 문체부가 불쏘시개 역할을 해내겠다”는 말을 쏟아냈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지방 연극을 육성시키겠다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간담회 참석자 면면을 봐도 다 서울 안에 갇혀있다. 연극은 서울만의 마당이 아니다. 아무리 서울 대학로가 연극의 메카라고 하지만 대학로가 한국연극을 대변하기에는 옹색해진 지 오래다.

‘연극의 해’ 지정이 연극 그 자체를 육성시키려는 의도라면 지역적, 세대적, 성별적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며, 대중성과 예술성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안 된다. 위기에 빠진 한국연극을 구할 방안으로 ‘연극의 해’를 지정한 것이라면 지금의 틀로는 어림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새 판을 다시 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년 ‘연극의 해’ 지정은 그저 말놀음 즐기는 정치인들의 탁상공론, 안줏감에 불과하다.

노하룡 (극단 삼산이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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