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대구 신기중

  • 이효설
  • |
  • 입력 2019-05-20 07:54  |  수정 2019-05-20 09:35  |  발행일 2019-05-20 제15면
화장 안하기도 학생자치회서 결정…“학교 주체는 우리”
학생자치회서 만든 ‘생활평점제’로 상벌
상점땐 쿠폰·벌점땐 詩 필사 암기 등 실천
등굣길 장미 건네기 등‘친구사랑주간’도
스스로 필요한 것 찾아 문제해결까지 척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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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에서 아래로 신기중 학생자치회 학생들이 회의를 열고 있는 모습, 등굣길 교문 앞에서 친구들에게 장미를 나눠주며 캐릭터 인형이 웃음을 선사하는 모습, 등교 시간에 사제가 함께 운동장을 걷고 있는 모습. <신기중 제공>


“신기하다!” 대구 신기중이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그 이유는 학교에 화장하는 여학생이 없어서다. 그것도 학생들 스스로 그렇게 하기로 결정해 교사들이 뭐라하지 않아도 무슨 철칙처럼 지킨다. 뿐만 아니다. ‘비선호 학교’라는 오명도 최근 들어 조금씩 벗어던지는 기미가 보인다. 굳이 이 학교가 최근 신입생 지원율에서 선방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확실히 학생들이 달라졌다. “신기중 학생들은 학교 가기를 좋아한다”는 입소문이 가장 적절한 증거가 아닐까 싶다.


학생자치회서 만든 ‘생활평점제’로 상벌
상점땐 쿠폰·벌점땐 詩 필사 암기 등 실천
등굣길 장미 건네기 등‘친구사랑주간’도
스스로 필요한 것 찾아 문제해결까지 척척

◆ 선후배 한자리서 의견 나누는 학생자치회

중학생 상당수가 화장을 하는 시대다. 오전 등교 때 교문 앞에서 교사에게 계도 조치를 받아도 교실에 들어가 다시 화장을 하는 것이 요즘 세태다. 교사에게 안 들키려고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여학생들도 있다. 학교마다 생활안전부장 교사들에게 물어보면 학생들과 겪는 첫째 갈등으로 ‘화장’ 문제를 꼽는다.

배지득 교감은 “신기중에 부임해 가장 놀란 것이 여학생이 화장을 안 한다는 것”이라면서 “다른 학교 선생님들께 자랑하면 안 믿는다”고 귀띔했다.

신기중 여학생들은 왜 화장을 안할까. 놀랍게도 학교에서 강제한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학생들이 스스로 의논해 결정했다. 바로, 학생자치회에서 만든 ‘생활평점제’ 덕택이다. 생활평점제는 자치회에서 자체적으로 정한 학교 내 생활 항목 20개를 만들어 상점과 벌점을 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학교폭력 근절 취지로 만들었지만, 학생들의 대표적 의사결정과정으로 자리잡았다.

‘화장을 하느냐, 마느냐’는 매년 자치회 생활평점제 회의의 주요 안건이다. 회의에서 학생들은 화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발표하고, 자치회 간부들이 이 의견을 수렴해 각 학급에서 다시 발표한다. 여기서 나온 의견들을 갖고, 다시 자치회를 열어 최종 의사결정을 하고 향후 활동계획을 결정하는 식이다. 회의 시간은 30분에 그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몇 시간 동안 끝이 안 날 때도 있다.

학생들은 결국 ‘학교에서는 화장을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예설 학생자치회장(3학년)은 “회의 때 ‘우리 학교는 선배들이 화장을 안 했으니 후배인 우리도 하지 말자’거나 ‘1학년 때는 화장을 하고 싶었지만, 2학년이 되면서 학생다움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됐다’는 등 대부분 화장을 하지 말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말했다.

공서현 자치회 부회장은 “선후배가 한자리서 의견을 나누면서 학생은 물론, 선생님 의견에 대해서도 골고루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다. 일찍부터 화장을 하면 나중 대학생이 됐을 때 피부가 안 좋아질 것이란 어른들 얘기도 새겨 들었다”고도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자치회에서 직접 화장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학생 선도부가 오전, 오후에 학교 순찰을 돌며 화장한 학생에 대해 벌점을 주고 있는데, 벌점을 받는 학생이 거의 사라졌다. 얼마 전에는 화장 관련 새로운 안건도 올라왔다.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건 화장일까, 아닐까?’ 화장품 가게에 봉숭아 가루액을 판매하니 이것도 미용 목적의 화장 아니겠냐는 의견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김현석 신기중 교사(생활안전부장)는 “우리 학교는 진정한 의미의 학생 자치가 이뤄지고 있다. (교사가) 화장 하지 말라고 계도하다 보면 학생들과 거리가 생겨 다른 문제로 넘어가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사안을 직접 찾아 결정하니 교사와 학생간 신뢰가 덤으로 생겼다”고 말했다.

◆벌점 받으면 시 한편 필사하고 암기 시간

자치회의 생활평점제 효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신기중 학생들은 상점을 5점 이상 받으면 이를 쿠폰으로 바꿀 수 있다. 3개월에 한번 열리는 신기장터 날, 학생들은 알뜰히 모은 쿠폰으로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 선보이는 음료수, 과자, 필기구를 사들일 수 있다. 소소한 품목들이지만 작은 소비가 주는 기쁨을 학생들은 느낄 줄 안다.

반대로, 벌점을 5점 이상 받으면 학생들이 정한 ‘반성의 날’에 시를 한편 필사하고 암기한다. 쿠폰, 신기장터, 반성의 날, 시 암기 등은 모두 학생들이 직접 기획한 것들이다.

학생들은 ‘친구사랑주간’도 선보였다. 등굣길에 친구들에게 장미 한송이, 막대 사탕을 나눠주는 단순 이벤트였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서로 장미를 주고받고, 소감을 전하는 모습을 동영상에 담았다. 영상 속 학생들은 장미꽃 한 송이를 고이 들고 “뜻밖의 선물을 받아 정말 기쁘다. 장미 한 송이, 정말 버릴 수 없을 것 같다”고 감격해 했다.

학생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부분에 대해 직접 찾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학교 분위기도 더 좋아졌다. 교사와 학생 간 소통이 유난히 자연스럽다.

이예설 학생자치회장은 “자치회의 안건을 우리가 정하고 결론도 우리가 내리면서 스스로 더 진중해졌다. 마냥 따르는 것보다 훨씬 즐거운 과정이란 것도 배웠다. 직접 결정한 것이니 당연히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겼다”고 자치회의 매력을 설명했다.

◆“학생이 주도하는 기회 계속 만들 것”

학생들의 착하고 주체적인 모습에 감화받는 쪽은 교사들이다. ‘자녀가 있다면 이 학교에 다녔으면 좋겠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교사들이 적잖다. 학생들이 예의바르고, 학교 일에 적극 참여하며, 학부모 민원이 거의 없단다.

소문이 나자 다른 학교에서 신기중에 견학을 오는 일도 생겨나고 있다. 올해 초에는 덕화중, 입석중 교사들이 학생들의 자치회 활동을 참관하러 왔다. 특히 회의 전 과정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끝까지 지켜봐 화제가 됐다.

임상훈 교장은 “학생자치회 덕분에 교사와 학생 간 신뢰가 생기고 학교가 힘을 얻고 있다. 학교의 주인공은 교사가 아닌 우리 학생들이다. 학생들이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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