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인피니티 건틀렛과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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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8   |  발행일 2019-05-18 제23면   |  수정 2019-05-18
20190518

마블사에서 만든 히어로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만화를 실사화한 영화라 생각하고 무시하고 싶어도 볼 때마다 느끼는 철학적 깊이에 놀란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관성 있는 스토리와 온갖 볼거리를 결합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 수많은 추종자로 인해 이번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흥행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인피니티 건틀렛’이란 장갑의 형태로서, 우주에 흩어져 있는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아 박으면 무한한 힘을 지니게 된다. 결국 타노스라는 악당이 모든 스톤을 모아 건틀렛에 박음으로써 무한한 힘을 가지게 되었고, 손가락 한번 튕김으로 인류의 절반을 사라지게 만든다.

언뜻 들으면 만화같은 이야기지만 사실 이런 일은 현실에서도 일어난다. 절대권력을 가진 독재자가 수많은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거나 심지어는 인종을 청소하려고도 하지 않았는가. 여기서 무서운 점은 타노스라는 존재가 절대 악으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꽤 괜찮은 철학적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절대권력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실현시켰을 따름이다. 하지만 자신의 믿음이 조금만 어긋나더라도 절대권력의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인피니티 건틀렛은 바로 절대권력과 독재를 상징하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철학적 기반을 가진 사람이나 소수 집단이라도 절대권력이 주어지면 저리될 가능성이 높은데, 철학적 기반은 고사하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누군가가 인피니티 컨틀렛을 착용하는 모습은 정말 상상하기 싫다.

그런데 독재라고 하면 우리는 북한을 먼저 떠올리지만 조금만 더 둘러보면 아직도 지구상에 독재국가가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중에 많은 나라가 왕정의 외피를 둘러싸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자원부국들이 독재를 유지하거나 민주주의가 퇴화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렇다면 풍부한 자원은 독재자에게 인피니티 건틀렛일 가능성이 높다. 그 중에서 단연 최고의 건틀렛은 석유다. 거기에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정치공학이 숨어있다. 정치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보상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독재자나 소수의 기득권은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자신들을 둘러싼 소수의 지지자에게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석유와 같은 필수자원은 그 돈을 마련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안 그러면 국민에게 세금을 걷기 위해 교육과 기반시설에 투자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석유매장량 1위인 베네수엘라의 역사를 보면 왜 이런 자원부국의 국민들이 저 고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드러난다. 19세기 독립 이후 군사정권인 히메네스정권이 들어서면서 시작된 권력게임의 중심에는 항상 석유가 있었다. 심지어 히메네스정권을 국민들이 무너트리고, 세 정당이 협력하는 ‘푼토피호 협약’을 맺어도 막대한 석유판매금이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정치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베네수엘라 국민이 사회주의 정권을 내세워도 변하지 않는 것은 기득권층 간의 석유 독점 전쟁이었다. 오히려 새로운 정치집단이 등장할 때마다 석유는 새로운 기득권을 형성하고 배타적인 세력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 포용적이던 사회제도가 배타적이 될 때 차별과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사회는 몰락한다. 그 결과가 민주주의가 퇴화하고 국민이 생필품 마련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과거 국내에서 석유를 발굴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만약 석유가 나왔다면 과연 민주주의가 이 정도까지 꽃필 수 있었을까. 상상에 맡기겠다. 분명한 것은 기득권자들이 세금 외에 자금출처가 있다면 국민에게 투자할 가능성은 매우 떨어진다. 독재는 이렇게 국가를 장악한다. 한 기자가 대통령과의 대담에서 야당에서 독재자라고 부르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것에 대해 공방이 벌어졌다. 그런데 뒤집어보면 이런 질문이 자유롭게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적어도 독재는 아니라는 증거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국민은 정말 대단하다. 누군가가 인피니티 건틀렛에 스톤을 모두 박고 절대권력을 휘두르려고 하면 죽음을 불사하고 일어나 방해했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시간여행을 하지 않고서도 많은 사람을 살려낸 셈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어벤저스는 대한민국 땅에 살고 있는 바로 우리 자신들이 아닐까.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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