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권력자들의 공무원 뒷담화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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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3   |  발행일 2019-05-13 제30면   |  수정 2019-05-13
靑 정책실장과 與 원내대표
정부 관료의 복지부동 험담
과거청산한다며 들쑤신 후
일손 놓은 공직사회 분위기
부메랑되고 국민생활 불편
[송국건정치칼럼] 권력자들의 공무원 뒷담화

“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 이런 건 제가 다 해야…”(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그건 해주세요. 진짜 저도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아요. 정부가…”(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단적으로 김현미 장관 그 한 달 없는 사이에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많이 해”(이인영)→“지금 버스 사태가 벌어진 것도…”(김수현)→“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들을 하고…”(이인영)→“이거 (녹음) 될 것 같은데, 들릴 것 같은데…”(김수현). 여당 원내대표와 청와대 정책실장의 공무원사회 뒷담화가 공개됐다. 문재인정부 출범 2주년인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청 을지로 민생현안회의 시작에 앞서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가 방송사 마이크에 녹음됐다. 정권 핵심부에서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을 탓하면서 한 번 손을 봐줘야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국토부 장관 교체를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 기간에 국토부 공무원들의 기강 해이가 있었고, 이 때문에 버스 총파업 사태가 일어났다고 개탄했지만 실제론 공직사회 전부를 겨냥한 말이다.

다양한 비판이 쏟아진다. 의사결정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와 공직사회 소통창구인 여당의 고위인사가 국정운영의 손발인 공무원들을 험담했으니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력자들의 갑질이 느껴진다는 논평도 나온다. 부처 공무원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장관이나 차관이 감독해야지 여당 원내대표가 어떻게 다 하겠다는 건지, 또 청와대에서 그걸 해달라고 부탁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인식과 속내가 두 사람만이 아니라 정권을 운영하는 세력이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마저 높다. 주로 정권의 임기말에 나타나는 공직사회 복지부동이 문재인정부에선 불과 2년 만에 만연했으니 조기 레임덕을 인정한 셈이란 해석도 있다. 김수현 실장도 “임기 4년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공직사회가 과거 정권 때보다 이른 시점에, 어쩌면 문재인정부 출범과 거의 동시에 의욕을 잃어버린 건 사실이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지시하지도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잡아뗀 ‘적폐청산 수사’ 때문이다. 정권 출범 초 행정부 각 부처에 적폐청산 TF를 만들어 공무원사회를 밑바탕부터 들쑤셨다. 단순히 상사의 지시에 따랐을 뿐인데 사법처리를 당해 전과자가 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작년 6월 교육부는 박근혜정부 시절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사람들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수사대상엔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교육문화수석, 정무수석 같은 정책입안자도 있지만 지시를 수행한 실무자급 공무원, 국정교과서 홍보업체 관계자까지 포함됐다. 교육부는 산하기관 직원들에 대해 징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다른 부처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공무원사회의 불안감은 커졌고, 문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국무회의에서 “정책상의 오류가 중대한 경우 정책 결정권자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당시 정부의 방침을 따랐을 뿐인 중하위직 공직자들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 공무원들은 정상적인 업무를 보다가도 정권이 바뀌면 ‘적폐’가 될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일하기 꺼리는 풍조가 퍼져 있다. 심지어 상사의 지시를 녹음하거나 SNS 대화 내용을 저장하기도 한다. 기재부 내부 고발자인 신재민 전 사무관은 “정권이 바뀌면 이슈가 될 만한 일들은 비망록을 만들어 보관하라는 상사의 권유를 받았다”고 했다. 집권세력이야 그들의 국정과제였던 보수정권 청산의 부작용이고, 자업자득이라고 쳐도 공무원이 일손을 놓으면 국민생활이 너무 불편하다. 결국엔 정권에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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