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수목장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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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1   |  발행일 2019-05-11 제23면   |  수정 2019-05-11
[토요단상] 수목장 예찬
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 학과 교수

최근 장례문화가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진하게 받고 있다. 바로 수목장 때문이다. 수목장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도 한 TV 드라마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아 수목원으로 향한다. 잘 조성된 숲길을 따라 가다 보면, 엷은 안개 속에 보기에도 멋진 참나무 한 그루에 푯말이 붙어 있다. 도착하자마자 나무를 한껏 껴안는다. 그리곤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털어놓는다. 나무에 기대어 앉아 고단한 일상의 피로를 풀어놓는다.

처음 이러한 장면을 보았을 때 꽤나 신성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새로운 장례문화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당연시 여겼던 매장문화와 어느새 보편화된 납골문화가 우리의 장례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석조건물로 잘 만들어진 납골당에 각자의 추억을 담아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개개인의 납골당을 보면 죽음이 멀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이 느낌을 처음으로 강하게 받은 것은 대학교 때 졸업여행지였던 제주도에서였다. 당시 처음 가 본 제주도의 새로운 풍경에 신기해하면서 가장 신선한 충격처럼 다가온 것은 집 부근에 있는 무덤이었다. 단독 주택 부근에는 거의 무덤이 있었다. 그렇게 크지도 않은 작은 무덤이 서너 개 있었다. 아마도 가족묘일 것이다. 이렇게 무덤이 생활공간 속에 있는 것을 본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신기해했다. 마침 민박을 하게 되었는데, 그날 밤에 똑바로 누워 잠을 자고 있을 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시신과 같은 방향일 수도 있고, 다른 방향일 수도 있겠지만 거의 같은 공간에 누워 자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정말 묘한 느낌이었다. 그 다음날도 같은 느낌으로 하룻밤을 보냈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삶의 공간 속에 함께 있는 것이다. 이때의 경험이 나한테 있어서 죽음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자리 잡게 된 계기가 되었고, 삶과 죽음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40여년이 지난 지금, 수목장을 보면서 다시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로 죽음조차도 생명력을 지닌 살아 있는 식물과 연결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죽어도 또 다른 형태로 모습을 달리해서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수목장은 화장한 분골을 나무 밑에 묻거나 뿌려 자연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새로운 장례문화이다. 매장문화나 납골문화와는 다르게 살아 있는 나무를 매개로 한다는 점이 큰 차이가 있다.

현대 수목장의 유래는 스위스인과 영국인의 우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스위스의 전기 기술자 윌리 자우터는 1993년 봄에 영국인 친구 마이클의 부음을 접하게 되었는데, 살아 생전에 “내가 죽으면 너와 함께 할 수 있도록 나를 스위스에 묻어다오”라고 한 말을 실천하기 위해, 친구의 화장한 분골을 나무 밑에 뿌리는 방법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그 주변에 분골을 뿌리고, 그 나무를 친구의 분신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윌리 자우터가 자신의 이런 수목장이 종교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알려지면서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수목장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새로운 형태의 장례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묘지가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주택면적의 절반이나 된다고 한다. 매장문화가 포화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매장문화의 문제의 대안으로 선호한 납골문화 역시 납골당 조성 등으로 큰 문제점을 낳고 있는 실정이다.

장례문화도 시대에 따라 진화해 가고 있다.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 장례문화가 나타나고, 또 언젠가는 인간이 다시 매장을 선호하여 다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기존의 장례문화의 대안으로 떠오른 수목장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 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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